“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이 1ㆍ2라운드였다면 이젠 3라운드”

“대기업들이 대형마트를 시작으로, 뒤이어 에스에스엠(SSM: 기업형슈퍼마켓)으로 골목 상권을 비롯한 영세 상인을 죽였다. 그것이 1ㆍ2라운드였다면 이젠 3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대상(주)’이 어떤 기업이냐. 우리가 대상의 미원과 소금을 팔아줘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 대상이 이제 식자재 납품시장까지 진출해 영세 도매상의 생존권을 빼앗으려 한다. 이게 공정한 사회냐”

인천지역 상인 50여명이 10일 부평구 삼산동 도매시장에 모였다. 이들은 ‘대상기업 식자재 납품업 진출 저지 인천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소속 상인들과 삼산도매시장 상인들이다.

대책위와 도매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대상(주)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J식자재 업체의 지분 100%를 인수했으며, 이 J업체가 삼산도매시장에 대형매장(삼산동 508-3, 6) 신설 공사를 하고 있다. 현재 마무리 공사만을 남겨 놓고 있다. 사실상 대상이 운영하는 식자재 매장인 셈이다.

삼산농산물도매시장 인근에 있는 이 도매시장에는 식자재 등을 다루는 도매점 36곳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대상의 식자재 매장이 진출할 경우 이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또한 대책위는 대상이 삼산동에서 성공하면 구월농산물도매시장과 부평 전통시장 등에도 대형 식자재 매장을 개설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이상복 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상인들도 돈만 벌기 위해서 장사하면 안 된다. 행복을 위해 장사를 해야 한다”면서 “대상이 어떤 기업이냐, 우리가 만들어준 기업이다. 대상이 영세 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화동 부평종합시장상인회장은 “다음 주 중으로 중소기업청에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사업조정 신청을 내고 지역 도매상인들과 단합해 인천에 대상이 진출하는 것을 강력하게 막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조중목 인천도매유통연합회장도 “대기업들이 중소상인들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로 성장했음에도 우리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고 한 뒤 “대상은 중소기업의 밥그릇을 탐내지 말고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대기업다운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장했다.

연대사에 나선 문병호 민주당 인천시당위원장은 “인천에서 처음으로 SSM 저지 투쟁을 전개해 성과를 냈고, 그 성과는 SSM 문제가 사회문제화 됐다”고 상인들을 격려했다. 김응호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사무처장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SSM 입점을 저지했다. 부평과 삼산 상인들이 힘을 합쳐 막아내자”며 연대의사를 밝혔다.

한편, 신축 중인 이 매장은 건축법을 위반해 부평구로부터 원상복구 명령을 통보받은 상태다. 당초 두 개 동의 가설건축물로 허가를 받았는데 두 개 동을 하나로 연결해 매장으로 꾸몄고 내부를 복층으로 설계했다. 구는 건축주가 원상복구를 하지 않을 경우 가설건축물 허가 취소와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삼산도매시장처럼 최근 이마트 등 대형유통업체의 소매업(대형마트, SSM 등)에 이은 도매업 진출은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씨제이(CJ), 엘지(LG)아워홈 등 대형 식품제조업체들이 식자재 납품영역까지 진출해 중소도매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책위 등에 따르면, CJ의 경우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K유통 식자재업체의 지분 51%를 인수했고 안양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를 통해 식자재 납품업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대상의 경우도 광주, 대전, 경기 하남과 일산 등의 식자재 납품업체 지분을 인수했다. 특히 대전의 경우 시장 안에 매장면적 1300㎡ 규모의 판매시설을 신축해 도매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대전 식자재 납품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책위 정재식 사무국장은 “지역의 건강한 식자재 제조업체들의 지분을 인수해 제조업체를 장악하더니, 이제는 직접 도매업을 하겠다는 형국”이라며 “대형마트와 SSM이 1ㆍ2라운드였다면, 이제 3라운드로 접어든 상태”라고 지적했다.

 

“소중한 삶의 터전 꼭 지켜낼 것”

5년 동안 일군 일터, 대기업에 빼앗길 판

“지금도 장사가 안 돼 (싸게 팔기 위해) 마진(=중간 이윤)을 많이 줄였는데, 대기업이 들어오면 뭘 더 줄여야할지 막막합니다”

집회에 참가한 김광식(44ㆍ삼산동)씨의 얼굴에 땀이 흐른다. 김씨는 5년 전부터 식자재 가게를 하고 있다. 주로 대용량으로 나온 업소용 상품을 판매한다. 근처에 삼산농산물도매시장이 있어 채소를 사러 온 외식업 관계자들이 주요 고객이다. 그만큼 시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오는 손님만 받아서는 가게를 운영할 수 없다. 판매처를 뚫기 위해 영업에도 나서고, 식자재를 업소에 직접 배달해야한다.

“지금까지 자리 잡느라 고생 많이 했지요. 힘들게 닦아온 일터를 대기업이 고스란히 빼앗아가는 것밖에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근처에서 김씨처럼 식자재 도소매업을 하는 상가는 40여 곳이다. 농산물도매시장이 들어선 10년 전부터 자리를 잡아온 곳이 대부분이다. 이곳 전체 거래 규모는 한 달에 100억원 정도. 이곳에 대상(주)이 들어오면 이중 40억~50억원 정도를 대상(주) 가져갈 것으로 상인들은 보고 있다.

“애들이 중학생이라 앞으로 들어갈 돈이 더 많은데, 돈 많은 대기업이 식자재 납품까지 하겠다고 나서니… 우리 같은 서민들이 자본력이 됩니까, 물류력이 됩니까?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김씨의 얼굴이 찡그러지는 건, 강한 햇빛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대상(주)의 대형매장이 들어오면 이곳 상가 40여개만 피해를 보는 건 아니다. 이 상가들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간 대리점도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 “생계가 걸린 문제니 최대한 방법을 찾아봐야죠. 대기업 본사에 가서 시위도 하고, 법적으로 어떤 길이 있는지도 알아볼 겁니다”

집회가 끝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김씨. 과연 그의 소중한 삶의 터전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심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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