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물폭탄과 산사태, 침수와 매몰….

최근 뉴스 첫머리는 온통 비(雨)와 연관된 원망과 탄식의 단어들이 장식하고 있다. 이미 수십의 생명을 앗아갔고 ‘100년 기록’까지 세웠는데 또 올 것이라는 소식이다. 우산을 챙겨야하는 번거로움, 평소보다 더뎌질 출근길 때문이 아니라 또 다시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침수가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진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비가 좋다. 예전에는 단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과 창문너머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좋았지만, 지금은 내가 부평에 살고, 머지않아 비를 기다릴 한남정맥, 굴포천, 미군기지 터가 부평에 있어 나는 비가 반갑기까지 하다.

만월산에서 원적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엔 아직 많은 생명이 깃든 숲과 계곡들이 있고, 지금은 비록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자동차의 차지이지만 언젠가 부평의 젖줄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게 될 굴포천과 그 지류인 청천천, 세월천, 산곡천, 동수천, 구산천이 있다. 반환되면 굴포천과 연계해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부평의 랜드마크가 될 미군기지도 내가 부평에서 비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물론 지금까지 부평의 도시변천사를 생각하면 나의 이런 바람은 단지 한 사람의 꿈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한국종합기계 자리에는 한화아파트, 청천동 동양철관에는 대우아파트, 전남방직에는 금호아파트, 코리아스파이스에는 엠코아파트가 들어섰다. 20년 전 매캐하고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던 공장굴뚝이 지금은 아스팔트도로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아파트숲으로 변해 더욱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수십만이 하루하루 쳇바퀴 삶을 꾸려가는 부평에서 어디를 둘러봐도 여유와 공간이 없어 보인다.

나는 오래전부터 생태도시 부평을 꿈꾸며 그 실마리가 굴포천 복개구간의 복원이라 믿고 있다. 물론 유지용수, 주차장과 도로, 하수도문제 등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많고 자동차중심의 도시공간과 생활양식을 바꿔야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 단기간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군기지를 비롯해 현재 예정돼있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만을 고려해도 앞으로도 부평은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그런 부평의 미래 모습과 우리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굴포천 복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사실 인천시의 굴포천 자연형하천 조성 사업은 2년 전에 이미 끝났다. 얼마 전 있었던 2012년 환경녹지분야 예산편성토론회에서도 시는 앞으로의 하천정책 방향은 이미 조성된 하천에 대한 유지관리라 밝힌 바 있다.

물론 하천관리사업소를 신설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1사 1하천’사업 등 하천을 유지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복개구간을 그냥 둔 상태의 하천은 절름발이 하천으로 매년 장마철이면 홍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100년 빈도, 200년 빈도의 기록적인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관된 하천복원계획을 수립해 도시를 설계해야한다. 비로 인한 자연재해는 산허리를 무자비하게 자르고 콘크리트로 물길을 막고 하천을 마음대로 변형시킨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심판이고 경고이다. 산과 들, 논과 밭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자리를 내주면서 회색건물과 도로가 물길을 막아 빗물이 도시와 도시민을 위협하는 물폭탄이 된 것이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펑펑 흘러나오고 가게에서 생수를 사서 마시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빗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이용하고 관리한다면, 소중한 자원이며 생명의 원천으로 도시의 미래가 될 것이다.

도시에서 하천은 도시온도를 낮추고, 미세먼지를 줄이고, 도시민들이 각박한 삶에서 여유를 찾는 곳이다. 또한 먼지를 씻어 내리고 숲을 적시고 땅의 갈증을 해소시킨 빗물이 흐를 곳도 하천이다. 결국 하천의 복원은 삭막한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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