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2000여명 찾아와 … 화려한 폐막

▲ '송여사님의 작업일지' 감독과의 대화(GV)를 진행하고 있는 인천여성회 연수지회 회원과 주인공. 그리고 감독(왼쪽부터).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영화공간 주안에서 진행된 7회 인천여성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8일 오전 10시 30분 첫 상영을 시작으로 영화 30여편을 상영한 이번 영화제엔 예년보다 많은 관객 2000여명이 찾아와 축제를 즐겼다.

특히 첫 상영작 ‘그대를 사랑합니다’엔 좌석 수보다 많은 관객이 몰려 일부 관객이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에 일찌감치 매진된 개막작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은 나중에 온 관객을 위해 영화제 측에서 갑작스럽게 옆 상영관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영화제를 총지휘한 최주영 집행위원장은 “여러 작품에서 매진이 나오는 등 예년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제를 찾아주셨다.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다. ‘관객과의 대화(GV)’는 소통을 위한 자리다. 해마다 GV를 준비해왔지만, 이번엔 무려 여덟 분의 감독님이 영화제를 찾아 관객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어 “‘송여사님의 작업일지’라는 다큐의 GV를 준비하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큐 주인공이 도시가스 검침원인데, 영화제 전단을 본 실제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이 영화를 보러오셨다. 감독님도, 주인공 ‘송여사님’도, 관객들도 모두 만족했고, GV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며 이번 영화의 가장 큰 성과로 ‘GV를 통한 소통’을 꼽았다.

또, 남성도 자문위원으로 함께 하게 된 것 또한 이번 영화제의 큰 변화다. 최 집행위원장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을 중심으로 자문위원을 꾸려왔다. 이제 영화제 자문위원으로 여성들이 자리를 탄탄하게 잡았다고 판단해 올해부터는 남성들도 함께 하게 됐다”며 “그동안 ‘왜 남자는 안 끼워 주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그동안 기다려주신 많은 분들과 더 넓은 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10일 진행한 폐막식엔 객석을 꽉 채운 관객과 함께 송영길 인천시장, 박우섭 남구청장 등 내빈이 참석해 3일간의 영화축제 마감을 축하했다.

▲ 3일 내내 인천여성영화제를 찾은 홍대림(왼쪽), 김나래씨.
영화관 로비에 한 쌍의 남녀가 영화제 자료집을 뒤적이며 얘기를 나눈다. 영화제 첫날에도, 둘째 날에도,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영화제를 찾았다.

“아는 언니 소개로 오게 됐어요” 김나래(20ㆍ인천 서구)씨는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친구 홍대림(29ㆍ서울 송파구)씨와 3일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대별로 상영하는 영화를 빠짐없이 봤다.

나래씨는 “첫 날, 첫 상영작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고 싶었는데, 매진이라 볼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같은 시간대에 상영하는 ‘아줌마의 바람난 카메라’(주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영상)를 봤는데, 의외로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처음 만들어서 어색한 부분이 조금 있었지만, 진솔한 삶의 얘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더라고요”라며 첫 영화 관람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대림씨는 “개막작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은 제목만 보고 ‘그 자식’이 현 대통령인 줄 알았어요. 상당히 위험한 영화, 용기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더라고요. 반전이었어요(웃음)”라며 “영화에 진보성이 담겨있고,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를 솔직하게 담아낸 것 같다”고 평을 내놓았다.

나래씨보다는 오히려 대림씨가 평소 영화제와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단다. “각종 영화제에 많이 찾아다니는데, 이전부터 인천여성영화제를 알고는 있었어요. 매번 오려고 했는데 여자 친구 덕분에 이제야 오게 됐네요”

집이 서울인 대림씨는 아예 영화관 근처에서 3일 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이번 영화제를 즐겼다.

나래씨는 “주사위 던지는 이벤트에 참여해 책갈피를 받았고요, 중간에 콘서트도 봤어요. 즐길 수 있는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있어서 더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가장 인상 깊은 영화는 둘째 날 상영한 5.18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오월애’였단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주제가 무겁고 서글퍼서 그런지 가장 가슴에 남아요”라고 말하는 나래씨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 같다. 곁에서 대림씨도 “저도 ‘오월애’를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사실 한 작품을 콕 집어내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좋은 작품이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내년에도 와야죠. 3일 동안 이렇게 좋은 영화를, 그것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일이잖아요” 다음 영화를 보러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기대에 차 보인다.

3일은 너무 짧아… 내년에 또 하고 싶어요

자원활동가 고건녕씨 “스펙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 인천여성영화제 자원활동가 이벤트팀원들과 함께한 고건녕씨(오른쪽 아래).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여성영화제 이벤트팀 자원활동가 고건녕(22ㆍ대학생ㆍ인천 부평구)입니다. 9월 복학을 앞두고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찾던 중 인천여성영화제를 알게 됐어요.

자원활동에 참여하고 싶고, 인천여성영화제가 어떤 곳인지도 궁금해서 작년에 상영된 작품들을 찾아서 봤어요. ‘데저트 플라워’랑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봤는데, 한 편의 영화로 문제의식을 잘 소화해낸 것 같고,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냈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관심사도 담겨있고요.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인천여성영화제가 맘에 들었어요.

자원활동은 영화제를 준비하는 것부터 함께 했어요. 거의 한 달 동안 영화제 사무실에서 일하고, 거리에서 홍보도 하면서 자원활동가 친구들과 친해지고 영화제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어요. 정도 많이 들었고요.

이벤트팀에선, 관객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했답니다. 어제는 영화 상영 전, 극장 안에서 관객에게 편지와 장미꽃을 전달하는 우체부 역할을 했는데, 난생 처음 무대에 서봤어요. 처음엔 떨렸는데 점점 부끄러움이 없어지더라고요. 평생 동안 무대에 나갈 것을 이번에 다 나간 것 같아요. 하하.

사실 요즘 우리 또래들이 ‘스펙’ 쌓는 데 많은 노력을 하잖아요. 그런데, 관심도 없으면서 취직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 보다는,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스펙’이 취직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저도 슬슬 제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일단 내가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다보면, 그 분야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런 생각을 갖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이젠 고민이 정리된 것 같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벌써 영화제 마지막 날이 되니, 많이 아쉬워요. 사실 어제 저녁부터 이런 생각했어요. 3일 동안 거의 13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몸은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기분 좋은 피곤함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전 내년에 인천여성영화제 자원활동을 또 하고 싶어요. 다음엔 운영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 이달 말에 가는 자원활동가 엠티(M.T.)도 물론 가야죠. 이곳에서 만난 분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남자도 여성영화제 가나요? 물론이죠!

자원활동가 최대환씨 “군대 가선 영화제 기간에 맞춰 휴가 나와”


▲ 자신이 만든 '우피데일리'를 들고 있는 최대환씨.
큰 키 때문에 어디서든 눈에 띈다. 올해까지 네 번이나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때론 관객으로 참여해온 최대환(24ㆍ대학생ㆍ경기 부천)군이 영화관 곳곳을 누비며 사진 찍고 관객을 상대로 인터뷰한다.

“이번에 영화제 ‘데일리’ 제작을 맡았습니다. 주요 상영작과 전날 있었던 일들을 지면에 기록해서 관객들에게 나눠드리는 거죠. 쉽게 말하면, 한 장짜리 신문 만드는 거예요”

최군은 형의 소개로 2007년 4회 인천여성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자원활동가 친구들 중 남자가 몇 명 없어서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여성 자원활동가와 함께 영화제 기간 동안 얘기를 나누고, 폐막식에서 함께 공연도 하면서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후 군복무 때문에 자원활동을 할 수 없을 때는 영화제 기간에 맞춰 휴가를 잡아, 5회는 폐막식, 6회 때는 3일 내내 관객으로 함께했다. 그리고 드디어 제대를 해서, 이번 7회 영화제에선 자원활동을 다시 했다. 무엇이 최군을 여성영화제로 오게 했을까?

“처음 자원활동을 시작했을 때, 영화제에서 말하는 ‘여성주의’가 뭔지 관심이 갔어요. 신선했고 깨닫는 게 많았어요. ‘여성주의’ 하면 ‘상생과 소통’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사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 계속 알아가고 싶어요”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 주안역 근처로 홍보활동을 나갔을 때, 나이 지긋한 한 남성이 “여성영화제에 남자가 가도 돼냐”고 물었단다. “남자가 여성영화제에 참여하는 걸 특이하게 보는 시선이 있어요. 사실, 여성주의는 여성들만 알아야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알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알아야한다’고 생각해요. 같이 살기 위해서”

영화제 데일리를 만들기 위해 사진 찍고, 글 쓰고, 인터뷰하고, 인쇄 맡기고 이른 아침 인쇄물을 찾으러 가는 과정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든다. 하지만 영화관 곳곳에서 자신이 만든 ‘데일리’를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뿌듯하고 기쁘다.
내년엔 데일리를 만드는 팀을 꾸리고 싶단다. 혼자서 다 하려니 벅차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관객도, 자원활동가도, 절반은 남성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여성영화제를 통해 맺은 인연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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