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이를 안고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던 날 3kg이라는 무게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느껴졌다. 바로 그날부터 ‘엄마’로서 내 일상은 시작됐다.

친정과 시댁이 먼 거리에 있는 나는, 나와 남편 이외의 제2 양육자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키워야했다. 남편이 출근한 시간에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했다. 몸이 지치고 힘든 것은 견딜만했지만, 함께 이야기 나누고 조언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야기 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이웃은 없었다. 그리고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주는 사회적 열등감도 나를 힘들게 했다.

인터넷으로 아이 키우자?

하루 종일 아이와 있으면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때, 인터넷 육아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꽁꽁 숨어있던 엄마들이 그곳에 모두 모여 있는 듯했다. ‘아이가 왜 울까요? 아이가 토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등의 육아법을 인터넷으로 물어보는 엄마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 역시 적극 동참해 내 경험을 댓글로 일러줬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남편 흉을 보고 시댁 흉도 보는 공간이었고, 이어지는 수많은 댓글을 읽으며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신기한 것은 ‘00동 나이 00살, 아이는 0개월 됐어요. 친구해요~’라는 글이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 역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웃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라도 사람을 만나, 사람답게 입을 열어, 사람다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난 엄마가 내 아이의 이모가 되어주고, 나 또한 다른 아이의 이모가 돼주었다. 그리고 어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육아의 해법을 고만고만한 이모들의 정보를 교환하며 마치 퍼즐 맞추기 식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가끔 내 아이에 맞지 않는 퍼즐을 끼워 맞추느라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혼자 맞추는 퍼즐보다는 그럴 듯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애 키우기 = 논다’?

이렇게 힘겹게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를 살아도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딱히 뭘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곤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와 씨름하며 산다. 반면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리, 팀장, 과장을 달고 있는데, 나는 ‘아이 잘 때 초스피드로 청소하기’ 혹은 ‘초간단 이유식 만들기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고 있을 쯤 ‘너 이제 뭐 할래?’ ‘너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을래?’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 꼭 있다. 정말 ‘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 = 노는 일’로 인식되고 있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아이 키우는 위대한 일’이라고 하면서 속으로는 ‘논다’라고 깎아 내리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 엄마들은 겉과 속이 다른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 혼란 속에서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키며 말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여성주의 의식이 투철한 지인이 일회용 종이기저귀를 쓰는 내 모습을 보며 ‘집에서 놀면서 천기저귀 써야지! 그리고 이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니?’ 라고 한마디 툭 던졌다. 그 말 때문에 오기가 생겨 그나마 몇 장 있던 천기저귀를 걸레통에 쳐 박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도 ‘내 인생이 이렇게 걸레처럼 썩어가는 구나’라고 불안해 했다. 사례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집에서 애보며 논다’라는 인식은 이곳저곳에 찌든 때처럼 남아있는 것 같다.

‘요즘은 애 키우기 편해졌다’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예전보다 편리한 육아용품이 다양하고, 아이를 재우는 방법부터 의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육아서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예전보다 아이 키우는 일이 편리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육아정보 속에서도 제대로 된 육아법을 전수해줄 어른이 없고 이웃이 없다. 또한 자아실현과 육아라는 두 개의 잣대 속에서 양면의 평가를 받아야하는 것이 요즘의 엄마들이다.

날씨가 덥다. 오늘도 아이 키우랴, 밥하랴 애쓰는 나를 비롯한 모든 엄마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진교(부평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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