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논밭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 주고, 피사리 하고… 열매 맺으면 거두어들이고, 이 모든 과정이 농사다. 언뜻 보기에는 밭고랑과 논이랑을 오가며 뙤약볕에, 비바람에 모진 고생하는 농부가 곡식을 재배하는 것 같아도, 사실 농부가 하는 일은 영양분이 될 만한 것을 열심히 공급하고 보살펴주는 것이다.

실제로 자라는 것은 씨가 맺힐 때부터 각인돼있는 정보대로 식물이 절로 자라는 것일 뿐이다. 결실의 때가 되어 우리 앞에 쌓여 있는 산물들은 이 정보를 입력한 조물주의 작품이다. 성경을 보면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한 후 마지막으로 창조한 인간에게 그가 창조한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했다.

이렇게 보면 농부는 신의 일을 돕는 신관과도 같은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된다. 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종족에게 신의 뜻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람, 특별한 존재. 이 생명을 다스리는 특별한 존재는 기계에다 재료를 넣고 물건을 만들어내는 제조업과 유통업 종사자들이랑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농부들은 상당히 마뜩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현대사회 들어 일상사를 ‘업’의 범주에 굳이 우겨 넣어야만 기본적으로 소통과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고 보니 고된 노역의 연속인 농사꾼, 농부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나서지 않는 기피의 ‘직군’으로 떨어졌다.

오호, 거룩하고도 지존이었던 신관이 이제는 스스로 제단의 제물로 바쳐지는 상황까지 온 것 아닐까. 젊은이라고는 그림자도 없는 우리 농촌의 현실. 환갑노인이 청년회장을 해야하는 상황이니 빈집 지키는 아이도 없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을 성장시키는 거룩한 사람들이 열심히 신을 도와 산물을 가꾸고 거두어들이면 그 후의 일은 ‘업’의 분야에 속한 관리인과 장사꾼들의 일거리이다.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면 우리 민족은 대대로 장사에는 그다지 우월한 유전인자를 타고 나지 못한 것 같다.

본디 학문을 좋아했는데, 상업을 가장 천시했던 혈통에서 벗어나고자 바지런히 머리 굴려 이문을 남겨야하는 일에 눈 뜨고 전문적으로 돌입한 것이 이제 겨우 2.5세대를 넘긴 시점 아닌가 싶다. 2000년 이상 세계를 무대로 장사를 대물림해 온 유대인, 영국인, 스페인인, 중국인, 인도인 등을 우리가 어떻게 당해 낸단 말인가? 그들도 수많은 시행착오, 지배와 피지배를 반복하면서 구축한 비법과 본능들을 가지게 되었을 텐데, 그들에 비하면 이제 막 시작인 우리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농부들이 가꾸어 내는 산물들로 지구촌 이웃들과 느긋하게 흥정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지금 우리의 사정은 딱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어찌 보면, 이제 우리나라는 이런 일 하기를 포기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물이 자라고 동물들이 풀을 뜯어야할 들판을, 아파트 지어 팔아야만 하는 부동산적 재화로만 보는 인간들이 많고 또 그 의견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먹히고 있는 이즈음, 거룩한 신관은 이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신관은 언제나 신이 들려주는 얘기를 고스란히 잘 전해야한다. 신이 만든 이 땅을 온전하게 남기고 보전하도록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의 전공분야가 농업생명공학 연구이다 보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다해 인류에게 유익한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는 것은 결국 신이 만든 이 세상 질서의 일부를 알아내는 것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신과 사귀며 열심히 농사짓는 이 땅의 젊은 농부들과 신이 만든 질서를 밝혀나갈 젊은이들이 다시 많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농사는 신이 짓는 것이기에 인간은 그 결실을 땅과 함께 서로 잘 나눠야한다. 그런 세상이 속히 오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속된 욕망을 얼마나 잘 다스리는가에 따라 쉬이 오기도 하고 더디 오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신과 신관들 앞에서 겸손하기로 하자.

/김영미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