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6월 8일이면 경북 왜관에 고엽제 수백드럼을 묻었다는 퇴역 주한미군의 증언이 나온 지 20일이다. ‘캠프캐럴’을 시작으로 주한미군의 환경범죄 현장이 부천 ‘캠프머서’, 춘천 ‘캠프페이지’에 부평 ‘캠프마켓’까지 전국적이고, 오염물질은 고엽제부터 폴리염화비페닐(PCBs), 핵무기까지 다양하며 하나같이 치명적인 것들임이 확인되고 있다. 과거부터 확인된 오염사례를 종합해보면 주한미군이 주둔하거나 주둔했던 곳은 ‘대부분’ 치명적으로 오염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캠프캐럴’에선 내부에 대한 한미공동조사가, 부천에선 반환된 기지 내의 민관합동조사가, 그리고 부평 캠프마켓 주변은 인천시에 의한 환경조사가 진행 중이다. 신속한 조사가 마땅한 것이나 일방적이고 미흡한, 통제되고 불공정한 조사가 오염여부 확인으로 ‘의혹’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보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새로운 불신을 낳고 있다.

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SOFA) ‘환경에 관한 특별 양해각서’ 중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 인체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알려진 오염)가 아닌 경우는 정화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적군’보다 대충 얼버무리려는 ‘아군’이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더 위협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부평 캠프마켓은 이미 2008년과 2009년 중금속뿐 아니라 유류 오염, 발암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의 기준치이상 오염이 확인됐다. 또한 폴리염화비페닐 수백드럼이 처리됐다는 보고서가 나왔고, 캠프캐럴의 고엽제가 이동?처리됐을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와 시민들의 불안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조사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6월 3일, 부평미군기지 주변에 대한 환경오염조사가 시작됐다. 인천시는 사안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인식해 긴급대책회의를 열었고 시차원에서 신속히 대처하고자 부평미군기지 환경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급하다고 ‘누가, 어디를, 어떻게’ 조사할 것인지에 대한 시민합의가 생략돼서는 안 된다. 이미 2009년 심각한 수준의 오염이 확인됐음에도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오염 확산 방지, 추가 정밀조사 등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인천시와 환경부의 태도를 볼 때 시민 참여가 더욱 필요하다. 민간전문가가 참여해 조사 계획, 과정, 결과까지 함께 해야 진정으로 시민들의 불안과 의혹이 해소될 것이다.

경북 칠곡의 지하수에서 물에 거의 녹지 않는 다이옥신이 ‘미량’으로 검출된 것을 중앙정부는 마치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성이 청산가리의 1만배, 비소의 3000배에 이르며 열화학적으로 안정해서 한번 생성되면 자연계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다이옥신은 자연 상태에서는 미량일지라도 검출돼선 안 되는 것이다.

인천시에선 이번에 조사지점 9곳을 과거 2008~2009년 오염이 확인된 곳으로 선정했다며 마치 이곳이 다이옥신, 폴리염화비페닐의 유력한 오염 예상지점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부평미군기지 주변을 이미 심각하게 오염시킨 것으로 확인된 TCE와 PCE는 금속공업 부품의 세정, 섬유제품의 정련가공, 드라이크리닝, 각종 화공약품 제조공정의 용매 등으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이에 반해 폴리염화비페닐은 변압기, 축적기 등 산업제품에 사용된 물질로 오염경로가 다르다. 즉 중금속, 유류, TCE, PCE의 오염지역이 다이옥신이나 폴리염화비페닐의 오염지역과 일치할 수 없어 다이옥신이나 폴리염화비페닐의 오염여부를 확인하려면 전 지역에 대해 처음부터 새롭게 조사계획을 수립해야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인천시의 조사결과는 대표성과 신뢰성이 결여돼 결과와 상관없이 인천시민, 부평구민들의 의혹과 불안감만 키울 뿐이다.

화학물질은 환경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물질로 전환이 가능하다. 결국 질량분석 등을 통해 부평미군기지 안팎에 어떤 물질들이 존재하고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그 물질의 유입경로는 어떻게 되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한다. 그것이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의혹과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일임을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명심해야할 것이다.

도시 한복판의 우리 땅임에도 백여년간 주인노릇을 할 수 없었던 곳, 맹독성 폐기물로 오염됐음에도 얼마나 오염됐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곳, 부평미군기지. 그곳을 온전하게 우리의 품으로 되돌리는, 미래세대로부터 부여받은 ‘미션’은 이미 시작됐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고 덜 수치스러울 기회가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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