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성수 인천의제21문화분과위원
시스템보다 인간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말하는 것을 대체로 휴머니즘적인 것으로 얘기한다. 그렇지 않은 것을 냉철하다고 하기보다는 비인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서구적인 것에 대비해서 동양적인 고유의 가치인 것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것이 갖고 있는 불합리와 불평등한 요소는 휴머니즘적 표현과 창작물들로 끊임없이 미화되어 간다. 그러한 문화적 세뇌는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것의 가치를 체내적으로 강화시켜놓는다. 전근대적인 유물 중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또한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런 인간적 관계를 중심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부평구청장이 이렇게 선포했다고 생각해보자. “불필요한 행사 방문, 단체 면담을 하지 않고 그 시간에 구정에 더욱 전념하도록 하겠습니다”

행사에 오지 않는 구청장을 건방지다느니 자신들을 무시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우선적으로 나올 것이다. 그것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어느 집단의 대표는 구청장에게 어떤 청탁을 한다. 그걸 들어주면 그 집단과의 관계는 유지된다.

그러나 그 청탁이 불공정하기에 거부하면 그 집단과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불행히도 그 집단은 선거에서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인간관계망에서 불합리가 합리를 축출하게 되는 것은 바로 합리적 행위자에게는 직접적인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구청장이 행사 참여와 축사를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선거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한다 해도 그걸 인정해주기보다는 비인간적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더 클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인간주의적 구조의 작동 속에서는 그러한 ‘인간관계 자본’이 적은 약자들은 끊임없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인간관계 자본’을 취득하려는 사람들의 돌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망의 중심에는 지연, 학연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과거의 추억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의 만남인 동창회를 ‘학연 자본’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참가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줄 고향을 지연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는 법이다.

지연과 학연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부당이익이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이 불공평하게 이익을 얻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그러한 ‘관계 자본’을 가지지 못한 약자들이 상대적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자리가 공공적인 자리일 경우 그 사람의 활동(?)으로 관련된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거기에다 그러한 ‘학연 자본’의 취득을 위한 노력의 거품이 커져가면서 그로 인한 소득 대비 과다교육비로 인한 경제적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거의 모든 대졸자는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학비 빚을 떠 앉고 시작할 것이다. 삶의 풍요를 위해 여러 곳에 쓰여야할 소득들 대부분이 교육시장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일 것이다. 결국 사회는 교육비 충당을 위해 불합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양산할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이러한 인간관계망을 중요하게 여기고,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하는 ‘인식 문화’가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깨어나가는 데 있어서 보수집단이야 현실을 고수하려는 집단이니 기대를 걸 수 없는 노릇이고, 진보집단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걸 텐데, 문제는 진보집단마저 이러한 인간관계망의 부당이익에 대해서 제대로 거부하고 있지 못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긴 시간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고, 사회의 각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희망을 걸어보건대 진보집단은 이러한 인간관계적 구조의 문제점에 더 점착해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해내고, 힘을 만들어내고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마치 자랑인양 이야기해왔다면 이제는 그러한 것이 가지고 있는 인식 문화 저변에 깔린 위험성을 지적해줘야 할 것이다.

지금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추후에 어떤 고귀한 것이든 그것들이 성공한 후에는 바로 그러한 인간관계 구조가 스스로를 옥죄일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 될 것임을 이제는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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