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하대학교 사학과 강사
1930년대가 끝나갈 즈음의 부평은 말그대로 ‘뜨는’ 도시였다. 당시 일본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잇달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의 행보를 걷고 있었고, 이를 위해 조선을 병참기지로 재편해가던 중이었다. 병참기지화 한다는 것은 군수물자, 식량, 노동력 등의 제공을 강요해 조선을 군수기지화 한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구상 아래에 인천항이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전진 기지로 주목받으면서 경성과 인천을 일체화시켜 연결하는 공업지대 구상이 실천에 옮겨졌다. 그리고 그중간 지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넓은 평야를 보유한 부평 일대는 중대형 공장들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입지를 갖춘 지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평이 공업지대로 지정되면서 교통, 전력, 공업용수도와 같은 기반시설들이 조성되는 것과 함께 1938년 무렵부터 조선국산자동차와 홍중상회(弘中商會) 공장 등 대규모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건설 경기의 활황은 땅 투기로도 이어져 ‘부평에 땅 몇 평 사놨다’는 말이 자랑할 만한 일이 될 정도로 부평은 새롭게 떠오르는 신도시로 급성장해 갔다.

황무지에 들이닥친 공장 건설 바람은 인구의 빠른 증가를 유발하기도 했다. 한 달에 7000~8000여 명씩 늘어나는 부평의 인구는 부평역 앞을 중심으로 수년 내에 3만∼5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고, 10년 안에는 100만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대도시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부평이 이처럼 공업도시로 변모하며 인구가 계속 늘어나자 이곳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주목하려는 이들도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평에 설립된 최초의 상설극장인 ‘부평영화극장’이다. 이미 이른 시기부터 재벌들이 대규모 극장을 부평에 세우려는 시도를 해오긴 했으나 결실을 맺은 것은 1943년 말이었다. 부평에 있던 아베(安部泰輔)라는 사람이 건설 허가를 받으면서 극장을 개관하고 뉴스와 영화 등을 매일 상영하기 시작했다.

부평영화극장은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모임이나 회의 등의 집회 장소로도 활용돼 소규모 광장의 역할도 맡았다. 광복 후 국회부의장이 된 조봉암이 부평을 찾았을 때 강연을 하던 곳도 이곳이다.

이보다 앞서 조선의 대표적 영화사였던 고려영화사에서는 부평을 제2의 촬영소로 선택하기도 했다. 경성에 있던 촬영소만으로는 영화 촬영 작업을 소화하기가 어려워 부평에 또 하나의 촬영소 건설을 계획한 것이다.

공사는 1940년부터 시작됐다. 부평과 영화와의 인연은 광복 후에도 이어져 부평, 대한, 금성극장이 삼파전을 이루면서 지역민들에게 영화에 대한 꿈을 갖게 해줬고 백마, 효성, 청천극장 등이 2선을 이루면서 관객 수요를 충당해줬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유행하며 기존의 거의 모든 극장들이 문을 닫았지만 부평은 오히려 영화산업에 있어서는 과거에 비해 퇴행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인접 지역으로 수요층이 이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관이 내부로 숨어버리면서 주변 지역과의 조화나 영화관만의 특성을 상실했기 때문 일 것이다.

길거리에 나붙던 영화포스터가 사라지면서 극장에 대한 설렘이나 추억도 조금씩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과거의 극장들은 영화를 보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지만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했다.

대한극장 앞의 계단은 아침나절 문을 열 때까지 앉아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에 좋았고, 현대백화점 꼭대기의 소극장은 전면의 통유리 앞에서 미군기지의 넓은 잔디 밭이나 부평전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좋았다.

백마극장 등은 영화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학생들이 몰래 입장한 후 영웅담 삼아 이야기를 풀어놓던 대상이기도 하고, 한 극장은 성적 소수자들의 전용관으로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인천이 각종 영상물의 촬영지로 부각되고 있다는 소식이 요즘 들어 자주 들린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는 최대 규모의 방송 촬영장이 생긴다고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는 예전에도 간혹 조성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그것들이 얼마나 호응을 얻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촬영지는 물론 관광 자원의 목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겠으나 주변의 자원들과 연계를 이루지 못하거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성하지 못하면 사장되기가 쉽다.

새로운 관광자원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사라져가는 극장들을 리모델링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줄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지역 문화는 결국 지역민들이 우선적으로 향유하는 방향으로 구상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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