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한 편안한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뜻밖에도 불꽃 튀는 논쟁을 불러왔기에 소개해본다.

어느 중학교에서 한 학급의 담임선생이 창문에 걸린 채 먼지가 묵은 커튼 네 개를 학생들에게 모두 빨아오라고 했다. 반장과 부반장이 하나씩 맡고, 나머지 중에서 한 개씩 빨아올 수 있는 친구는 손을 들라고.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는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말을 했다.

“하나는 제가 맡을게요. 나머지 하나는 선생님이 맡아주세요!”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칙한(?) 그 학생은 선생님과 일대 일 상담을 받아야했고, 커튼은 가산점 10점씩을 받는 조건(?)으로 학생 두 명이 하나씩 맡아서 해결이 됐다.

이를 두고 술자리에 함께 한 어떤 이는 학생 인권 때문에 교권이 무너지고 있음을 한탄했다. 누구는, 그래도 학생인데 나이 많은 선생님께 그럴 수 있느냐, 했다.

또 다른 이는 교사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지만, 한 번쯤은 커튼을 빨아올 수 있다고도 했다. 물론 그 학생을 높이 칭찬하는 이도 있었다.

학교 청소년 인권이 갈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 인권이 교사와 학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자녀의 인권을 얼마든지 침해(?)하는 부모 입장에서 인권 때문에 아이에게 선택권을 넘겨줘야하고, 출발선에 학생과 나란히 선 채 의식적인 인권 노동을 감당해야하는 교사의 입장이 너무나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생 인권은 곧 교권의 침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가.

더 깊게는 사회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체화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유보시켜야만 했던 어른들의 성장통! 그리고 무수한 시간을 거쳐 마침내 육화된 기성세대의 가치로서, 활짝 핀 권리의 한 때를 만끽하려는 순간에 ‘학생! 청소년! 인권!’의 이름으로 제재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반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또한 혜택인지도 모르고 일상에서 누려온 모든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매 순간 적용받아야하는 그 불편함과 뒤따라오는 권리의 축소를 쉽게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이 시대의 특수계층인 청소년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만큼은 학생 인권이 가져오는 불편함을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도를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혜경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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