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연일 뉴스는 뜨겁다.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 관련 소송 사건이 알려지면서, 공중파와 케이블방송의 연예뉴스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지상파 메인 뉴스프로그램마저도 이 소식을 헤드라인 뉴스로 내걸었다.

심지어 MBC 뉴스데스크는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자녀 소식까지 내보냈다. 발단이 되었던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관련 뉴스뿐 아니라,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온 국민의 눈과 귀를 할애할 심산인 모양이다.

그래, 나도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한마디로 “헉!” 했다. 서태지가 누구인가. 나의 스무 살을 충격으로 내몰았던, 문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스타였다. 그에 대한 호불호야 사람마다 천지차이이겠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문화 대통령’이라 칭할 만큼 20세기 말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랬던 그가 아무도 모르게 결혼을 했고, 또 이혼을 했다니! 그것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지아라는 여배우와 결혼과 이혼을 했다니!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이혼율이 5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에서, 성인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이혼하는 게 그리 큰 사건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옆 나라의 원전이 체르노빌 참사를 뛰어넘는 참사를 예고하고 있음에도 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의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고작 두 남녀의 이혼 소식이 이토록 난리법석을 피우며 지상파 메인 뉴스프로그램의 헤드라인까지 차지할 만한 뉴스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요 며칠 동안 대한민국은 두 사람의 결혼과 이혼 소식으로 온통 도배되었다. 뉴스보도와 연예가중계의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결혼과 이혼이라는 사건 보도를 넘어 신비주의를 고수했던 문화 대통령 서태지를 차지(!)했던 이지아라는 여배우의 사생활과 개인 신상정보를 낱낱이 까발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쯤 되면 이 나라 온 언론이 범죄행위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이 나라의 언론이 두 연예인의 사생활 캐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과 관련해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던 주간지에 대해 명예 훼손 책임이 없음을 판결한 법원의 항소심 판결 소식은 묻혀버렸다. 4.27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의 헛웃음 나는 불법선거운동 혐의 또한 연예인 가십 기사보다 못하게 흘러가 버렸다.

방송국에게 묻겠다. 서태지가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BBK 수사팀이 증인을 회유해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한 일보다 분개할 일인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던 서태지가 결혼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신은 BBK와 전혀 상관없다던 현직 대통령의 뻔한 거짓말(?)보다 더 중요한 뉴스감인가? 배우 이지아가 본명과 생년월일을 감춘 것이, 일당 5만원에 불법 홍보전화를 했던 알바 아줌마들을 천안함 사건에 분개해 자발적으로 나선 자원봉사자로 둔갑시킨 엄기영 후보의 거짓말(?)보다 더 큰 죄악인가?

BBK 사건에 관한 항소심 판결로 BBK 수사팀이 김경준씨를 회유한 것이 사실임이 증명됐다고 할 수 있으니, BBK 수사팀은 중립성이 전혀 없었단 이야기일진대, 제대로 된 수사팀을 새로이 구성해 제대로 된 수사를 다시 하라고 요구하는 게 방송이 할 일이다.

이번 재ㆍ보궐선거에서 횡행하고 있는 관권 금권 선거를 명확히 보도해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하게끔 돕는 게 언론이 할 일이다.

정말 들춰내야 할 비밀에는 입 닫고 정말 분개해야할 거짓말에는 귀 닫고, 이제는 나이 마흔이 다 된 성인녀의 결혼과 이혼에 호들갑떠는 방송이여, 언론이여, 그런 뉴스는 차고 넘치는 인터넷 찌라시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짜증날 정도로 차고 넘친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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