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배움과 열정④ 풍물패 소리오름

평생교육은 교육이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가정교육ㆍ사회교육 등을 망라해 연령에 한정을 두지 않고 전 생애에 걸친 교육으로 조직돼야한다는 교육관에서 비롯됐다. 이는 1967년 유네스코 성인교육회의에서 제창한 교육론이며, 우리 헌법은 이를 받아들여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야 평생교육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을 받았으며, 부평구 역시 2005년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이후 활성화 노력이 가시화됐다. 그 일환으로 부평구는 평생학습우수동아리를 선정해 행정ㆍ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우수동아리들의 활동을 소개해 평생교육을 활성화하고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는 상태를 가리켜 ‘미쳤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풍물패 ‘소리오름’ 회원들을 만났을 때, ‘이 사람들은 풍물에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들 스스로도 ‘풍물에 미쳤다’고 했다.

방사능 성분이 섞였다는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4월 7일 오후 2시, 새 둥지를 틀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라는 소리오름을 찾아갔다. 경인로변 농협중앙회 부개지점 건너편에 있는 한 상가건물의 지하. 1층 입구에 있는 우편물을 보니 ‘부개1동 269-6번지’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본드(bond)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면적 약 30평(99㎡)을 연습실과 사무공간으로 나눴는데, 아홉 명이 연습실 거울 면을 뺀 전체 벽과 천장에 방음재를 붙이느라 정신이 없다. 풍물연습을 할 때 찾아갔으면 좋으련만, 미안함을 무릅쓰고 틈틈이 인터뷰해야 했다.

▲ 풍물패 소리오름 회원들.<사진제공ㆍ소리오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독립

상모(=농악대들이 쓰는 벙거지, 또는 벙거지 꼭대기에 길게 늘어뜨린 술) 돌리기를 위주로 하며 악기 또한 잘 다루려고 노력해온 소리오름은 창단한 지 올해로 12년째다. 현재 열여덟 명이 함께 하고 있는데, 열다섯에서 스물다섯 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김나미(43) 회원부터 이규원(67) 회원까지 40대에서 60대가 함께 한다. 60대가 셋이고, 남성은 둘이다. 부평에 적을 두고 있지만 부평에 사는 사람만 회원이 되는 건 아니다. 너무 멀어 오가기가 힘들다며 얼마 전 그만 둔 한 회원은 서울에서 살았다.

소리오름은 줄곧 부평문화원에 있다가 지난해 10월 정기발표회를 끝으로 그곳을 떠났다. 이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회원들이 돈을 모아 직접 3주째 공사를 하다 보니 힘에 부칠 만도 한데, 4월 안에 문을 열 생각에 마음은 가볍다.

“소리오름에서 가장 오래 묵은 여우”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봉숙(55) 회장은 “소리오름에게 부평문화원은 친정 같은 곳이죠. ‘잘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나왔죠”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말처럼 소리오름의 시작은 부평문화원이 있어 가능했다. 특히 조성돈 부평문화원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다.

“제가 원래 끼가 있어나 봐요. 부평구청에서 탈춤을 배웠는데, 97년 아이엠에프(IMF) 사태 때문인지 강사 지원이 끊겼어요. 그때 친구 소개로 부평1동 풍물단에 들어갔고, 99년 전국체전 마스게임에 나가 운동장에서 한 판 뛰고서 조성돈 선생을 만났어요. 그때 그러더라고요. ‘쪼그마한 거 아시죠. 춤사위가 보통이 아니에요’라고. 그 뒤 부평공원에서 조 선생의 춤사위를 보고 반해서 문화원에 따라 들어갔죠”

김 회장의 이야기는 더 이어졌다.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농악에 정철기 선생님, 상모에 이동주 선생님, 사물놀이에 이윤구 선생님, 남사당놀이에 안중범 선생임, 이 분들을 조 선생이 다 모셔다 줬어요”

상쇠(=두레패나 농악대 따위에서 꽹과리를 치며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를 맡고 있는 이명숙(46)씨가 이야기를 거들었다. 그는 지금 부평풍물단 단장이기도 하다. “경북 대구가 고향인데, 어렸을 때 어른들이 지신밟기를 하면 뒤를 종종 따라다녔죠. 그걸 잊고 지내다가 문화센터 구경 갔다가 풍물 하는 걸 보고 어렸을 때 감정이 슬슬 올라오더라고요. 그 후 부평문화원에서 교육을 받았죠”

▲ 지난해 부평문화원이 주최한 인천시민문화예술경연대회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소리오름’ 회원들.<사진제공ㆍ소리오름>
부평의 풍물 전국에 알려

그의 이야기는 소리오름 자랑으로 이어졌다. “조성돈 선생님이 연결해줘 2001년부터 전국대회에 많이 다녔어요. 2003년 세계사물놀이대회를 비롯해 전국대회에 다니면서 장원도 하고 대상도 타고 여러 번 상을 탔습니다. 충남 당진에 당나루대회라고 있는데, 2006년에 인천 전역에서 한 팀이 추천돼 나갔는데, 우리가 일등을 했지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주부 풍물단 중 으뜸이라고 자부합니다”

부평에는 풍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22개 동마다 풍물단이 있고, 동 풍물단연합회가 있다. 또, 부평구에서 관리하는 부평풍물단이 있다. 삼산두레농악도 거의 복원됐다. 이 모두 부평풍풀대축제의 성과라 할 수 있으며, 부평문화원의 역할이 컸다.

이 부평풍물대축제가 전국에 알려지기 전에 부평의 풍물을 알린 건 소리오름이라 할 수 있다. 전국에서 소리오름을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명숙 회원은 “부평풍물단이 올해로 4년째 접어드는데, 단원 서른여덟 명 가운데 우리가 열넷에서 열다섯 명 소속돼있어요. 부평풍물단의 발전에 일조한다고 할 수 있죠. 지역에서 배운 만큼 지역에서 우리의 역할을 계속해야죠”라고 말했다.

▲ 2009년 사회복지시설인 은광원에서 강습 중인 모습.<사진제공ㆍ소리오름>
배운 만큼 지역에 나눠야

소리오름은 부평의 풍물을 알리고 발전시키는 일뿐 아니라 봉사활동도 열심이다. 배운 기능을 가지고 문화 나눔을 하는 것. 12년의 역사만큼 회원들의 강습능력 또한 뛰어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운 만큼 지역에 나눠줘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소리오름 회원들은 그동안 사회복지시설인 은광원과 예림원, 여러 경로당 등에 봉사공연을 다녔다. 지금은 부평구건강증진센터에 나가 지적장애아들에게 강습봉사도 한다. 공연활동도 활발하다. 부평풍물축제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에는 아시아이주민축제에서 공연했다. 부평구청장기 축구대회 개막 길놀이도 예정돼있다.

풍물을 한 지 17년 됐고, 소리오름에 함께 한 건 3년 됐다는 김광옥(57) 회원은 “풍물 사랑, 공부에 대한 열정, 봉사하는 보람 때문에 함께 하죠. 배웠으니 지역에 나눠야하지 않겠어요. 취하기만 하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그는 삼산2동 풍물단 한울타리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가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물려줬다. 그도 부평1동 풍물단 출신인데, 부평공원이 조성될 때 그곳에서 공연하기도 했단다.

▲ 지난해 부평문화원이 주최한 인천시민문화예술경연대회에서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소리오름’ 회원들.<사진제공ㆍ소리오름>
신명이 있어 끈임 없이 배운다

그러기 위해 회원들은 끊임없이 배운다. 김봉숙 회장은 “매주 화ㆍ목요일에 모여 서너 시간씩 연습해요. 처음엔 이채, 삼채만 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끝도 없고, 지금도 배워요.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공부의 맛을 알아 취미를 넘어 공부를 계속하는 분들이 많아요. 강습 나가서 번 돈으로 공부하는 거죠. 배울 게 있으면 전국 어디든 다닙니다”라고 말했다.

배우다가 한계를 느껴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냐고 묻자, 김 회장은 곧바로 있다고 답했다. “부부사이에도 권태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다른 분들 모르겠는데, 가끔 찾아와요. 해도 안 되고 실력이 정체된다고 느낄 때가 있죠. 그걸 넘기면 뭔가가 확 다가와요”

학습, 즉 배우고 익힘은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양질전화의 법칙’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양이 쌓여야 질이 변하듯, 익힘을 반복해야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다는 이치, 즉 비약의 순간이 있는 것이다.

소리오름은 12년의 역사를 기반으로 더 나은 발전을 꿈꾼다. 새롭게 마련한 공간이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바람이다.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 놓을 것이다.

김봉숙 회장은 “연세 드시고 무료하시잖아요. 우리 음악, 궂거리 장단이 우리 몸에 가장 잘 맞아요. 또 정서에도 잘 맞아 저절로 덩실덩실 춤이 춰져요. 언제든지 오시면 어렵지 않을 것에요”라고 한 뒤 “가락을 머릿속에 계속 익혀야하고, 머리로 상모를 돌려야하고, 손으론 궁채와 열채를 쳐야하기 때문에 치매 걸릴 일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소리오름 회원들은 팔십대까지 이렇게 놀고,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배워보자고 자주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풍물은 뭘까? 김봉숙 회장은 “풍물은 삶의 활력소며, 봉사하는 기쁨과 특히 우리의 전통악기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풍물이 좋아 미치겠다. 현수막 흔들리는 소리가 장고, 북소리처럼 들린다’는 이들의 신명에서, 당당하게 즐김에서 행복이 묻어난다.

▲ 부개1동에 새롭게 마련한 연습실 방음 공사를 하다가 촬영한 기념사진.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봉숙 회장, 마지막이 이명숙 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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