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야. 어서 자라”

이 말은 ‘15세 미만 청소년 시청자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드라마를 보고 싶은 아빠의 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천성이 느리고 일상의 당연한 반복을 답답해했던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튼튼해진다”는 말을, 아이들을 통솔하기 위한 어른들의 권위적 교육관이라 치부했다. 난 허약한 아이였고 지금도 환절기 감기는 필수이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초여름엔 어김없이 더위를 먹고 맥없는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여름에 적응한다.

규칙적인 생활, 해가 떠 있을 때 깨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이 단순한 행위를 통해 생물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체내에 정보를 전달해주며 환경에 적응하게 해준다.

생물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체득한 ‘때’를 알려주는 시계를 ‘생체시계(circadian clock)’라 하며, 이 시계는 해가 뜨고 지는 시각뿐 아니라 하루 동안 일어나는 주변 환경 변화 즉, 온도, 습도, 공기성분 등의 변화를 감지하고 생물체에 전달해준다. 마치 시계 바늘을 돌리는 톱니바퀴들처럼 여러 개의 시계 유전자들이 순차적으로 서로를 자극해 하루를 단위로 매일 새로이 발현되면서 이 시계는 돌아간다.

운동을 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한 곳에 그저 서 있는 식물에게 이 생체시계는 외부 환경과 식물을 이어주고 소통하게 하는 절대적인 수단이며 관문이 된다. 가령, 움직일 수 없는 식물에게 밤은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저온이 된다. 식물은 갑작스런 저온에 노출되면 단백질을 생산해 식물체 내의 생화학적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동사하지 않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이 특이한 과정이 사실은 매일 식물체 내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밤이 되기 직전 저녁마다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식물은 저온 내성 유전자를 최대로 발현해 ‘ABA’ 등과 같이 저온 자극에 견딜 수 있는 호르몬을 최대로 분비해 밤의 최저 기온을 견디고 다시 낮이 되면 이를 멈추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전 과정을 시계 유전자들이 직접 조절한다. 밤의 저온을 견디듯 낮의 고온을 견디게 하는 과정도 식물 시계가 관여하고 있다.

식물 시계 유전자가 망가지거나 낮의 길이가 다른 지역으로 식물을 인위적으로 옮겨 심으면 밤낮이 바뀐 해외여행의 후유증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차 현상’을 식물도 보인다. 그러면 광합성이 저하되고 생장이 잘 되지 않거나 꽃이 피지 않기도 하고 종국엔 생존에 실패하게 된다.

식물이 아침과 저녁을 정확히 인지하고 스스로 체득했을 때 식물의 생장과 생식 효율은 최대가 되는 것이며, 식물이 서식지에 적응한다는 것은 식물 생체시계가 해당 지역의 아침과 저녁 주기에 맞춰 함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국적의 식물을 도입해 재배하고 있고, 지구 온난화가 진행돼 원산지에서 재배되던 식물이 점점 갈 곳을 잃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식물 생체시계 연구는 가능성 있는 대책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 건강하듯 식물도 충분한 영양과 환경의 밤낮과 일치는 리듬을 가지고 있어야 건강하다. 새 나라의 어린이가 규칙적으로 잠을 자듯 새로이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 잘 적응하는 식물이 미래의 지구를 지키는 식물이 될 것이다.

/김진아ㆍ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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