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초콜릿 이야기-주로 초콜릿 하나 못 받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멘션(언급)-로 가득했던 2월 14일의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며 한 달 뒤인 3월 14일엔 초콜릿 대신 사탕으로 단어만 바뀌어, 남자들의 탄식에서 여자들의 탄식으로 성별만 바뀐 채, 똑같은 이야기들이 타임라인을 대신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웃음이 났다.

문득, 3월 14일 즈음에 있는 한 기념일이 생각났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굳이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려 한다면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상술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장미꽃을 선물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사랑고백이 아닐까? 곧바로 트위터에 멘션을 남기기 시작했다. “3월에 사탕 대신 장미꽃을 선물…….” 여기까지 쓰다가 멘션을 지워버렸다. 세계여성의 날의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 보니 적절한 멘션이 아니다 싶었다.

“We want bread, but roses, too.”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뉴욕 루투거스 광장에 모인 여성노동자들이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10시간 노동할 권리를”, “노조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참정권을 달라”고 외친 사건을 계기로 전 세계의 여성노동자들이 이날을 기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이 시위가 있던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한마디로 열악했다. “10시간 노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지만 하루 14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심지어 작업시간에 공장 문을 잠근 채 노동자들을 가두고 일을 시켜 한 블라우스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노동자들이 미처 피하지 못해 떼죽음을 당한 일도 있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노동조합은 남성노동자들에게나 허락되는 일이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이 외친 구호는 “We want bread, but roses, too.” 빵도 원하지만, 장미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의미한다. 당시 여성에게는 참정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여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로서 생존할 권리와 더불어 정치적 주체,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 등에서는 세계여성의 날이 되면 연인이나 부부관계가 아니어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정당에서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빵과 장미는 그렇게 선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홍익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점심값 300원 때문에 그렇게 오래도록 싸우는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가 남자상사의 성희롱에 항의하다가 해고되는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여성들이 대부분인 학습지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해 단체교섭조차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70% 이상의 여성들이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언제 해고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서는 안 돼야 했다. 결혼한 여성노동자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쉴 틈도 없이 가사와 육아에 시달리지 말아야 했다.

해방과 더불어 근대화의 패키지 상품처럼 여성들의 참정권은 ‘선물’로 주어졌지만,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곧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서, 존엄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03년이 지난 2011년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여전히 빵과 장미를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103년 전 그들의 구호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들은 생존권을 원한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권리 또한 포기할 수 없다. 빵과 장미는 누가 거저 주는 선물일 수 없다. 3월에 장미꽃을 선물 받지 않겠다. 여성 스스로 빵과 장미를 만드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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