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세력관계이다. 군부와 관료의 힘이 센 사회는 ‘관료적 권위주의 국가’가 될 확률이 높다. 반면에 노동자와 시민의 힘이 강력한 국가는 시민의 권리가 더 보장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정치학자는 국가를 ‘세력관계가 응축된 제도’로 보았다.

 

복지국가는 자각한 시민들의 자기통치 산물

복지국가는 시민의 사회적 권리들(social rights)을 보장한 국가이다. 시민의 사회적 권리들의 목록은 양질의 교육, 의료, 주거, 소득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이 권리들이 그냥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권리보장을 위해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이 돈은 ‘불공평하게’ 세금으로 거두어지기 때문이다. 즉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증여세, 토지초과이득세 등은 못가진자들보다 가진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또한 이 돈에 기반 해서 만들어진 사회복지제도는 많이 가진자들이 아니라 덜 가진자들의 사회적 위험을 예방하고 치유하는데 개입할 것이다.  

이처럼 복지국가는 세금을 ‘불공평하게’ 거두어 ‘불공평하게’ 쓴다.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는 기여에 따른 분배라는 사보험 원리와 달리, 능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제도를 지향한다. 더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덜 혜택을 볼 가능성이 있는데도 이런 제도를 가진 국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인 부가 일하는 자들 즉 시민들로부터 나오고, 사회복지가 사회의 노동력을 보호함으로써 성장의 기반을 만들고, 사회 안정과 사회통합에 기여해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인다는 등의 다양한 논리가 제시돼왔다. 하지만 정치에서 그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한다. 즉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힘이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각한 시민과 조직하는 시민들이 그 사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각한 시민은 ‘사회복지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상식을 만들고,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위해 끊임없이 현존하는 정책을 비판했고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힘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제도화했다.

복지국가는 자각한 시민과 조직하는 시민들이 관료와 군부의 통치가 아닌 스스로를 통치하는 제도화의 과정, 다시 말해 ‘시민의 자기통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물이다. 이런 점에서 자각하고 조직하는 시민이 없는 복지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 없는 복지국가 논쟁 멈추어야

현재 한국에서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다. 주변부에서 소품으로 취급당했던 복지국가가 이제 정치의 전면에서 애지중지되고 있다. 진보 정당은 물론 민주당도 무상복지 시리즈를 시작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맞춤형 복지를 비롯해 다양한 카드들을 준비하고 있다.

틀림없이 내년 총선과 그 이후에 있을 대선에서 복지국가 형성과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복지국가가 곧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과연 그런가. 복지국가가 가능한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는 자각한 시민과 조직하는 시민들의 존재여부이다. 

한국사회는 발전주의와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사회복지를 실현해왔다. 따라서 ‘싸우면서 일 한다’, ‘산업전사’ 또는 ‘선성장후분배’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 한다’ 등이 시민사회의 지배담론이었다. 1987년 민주화를 통해 이것이 어느 정도 극복됐지만 1997년 말의 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이러한 경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한편, 시민들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통해 자각하고 자신들을 조직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현재 정규직 대공장 중심만의 노동조합과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진보정당들 역시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시민단체나 노동단체와 긴밀한 인적, 물질적, 조직적 연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사회복지의식은 잔여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즉 한국의 시민들의 다수는 노령, 빈곤, 실업, 의료, 주거 등의 사회적 위험의 책임이 기본적으로 개인과 가족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선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복지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용인한다.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공정한 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는 도달했지만, 사회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 노동시장유연화 등을 배경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복지는 시민들에게 좀 더 나은 사회복지서비스나 복지수당을 주는 정도에 그 목표가 있지 않다. 이것은 시민들을 정치와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의 대상 정도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현재 학계나 정치권의 다양한 사회복지 제안과 논쟁이 ‘시민의 자기통치’라는 기본관점과 대안을 담고 있는가. 혹시 정치인과 전문가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득표전략에 사회복지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원칙이 확인돼야한다. 사회복지는 시민들의 자기통치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성장후분배’ ‘빈곤의 개인 책임성’ 등의 기존의 통치의 상식들을 전복하고 정책을 평론하는 시민들이 자신을 조직해 나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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