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의 걷기여행 ⑫] 차마고도를 따라서,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1)

▲ 윈남성 지도.
지난달 22일, 중국 윈난성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 나가 있는데, 구례 사는 박두규 시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생명평화결사’에서 ‘연평도 평화기원 걷기’ 행사를 위해 도법스님 등과 함께 인천에 왔다고 했다. 인천 사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지역 분들이 와서 대신 해주고 있다.

잠시 후에는 한국작가회의로부터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느닷없는 문자다. 그동안 편찮으셨나? 인천문화재단 행사 때문에 인천에 오셨을 때 소설가 이경자 누님의 소개로 단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작년과 올해 유난히 어른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뜻이리라. 언제나처럼, 한국을 떠나는 마음이 두루 편치 않다.

8박 9일간의 공정여행

▲ 윈난성의 성도 쿤밍에 있는 운남민족촌에서 전통춤을 추고 있는 여성들.
지난여름에 이어, 1월 22일부터 30일까지 8박 9일 동안 ‘국제민주연대와 함께 하는 공정여행’에 다녀왔다. 윈난성의 쿤밍과 따리, 리장, 루구후 등 차마고도와 중국의 소수민족을 돌아보는 공정여행이었다.

중국남방항공을 타고 광저우를 거쳐 쿤밍으로 갔다. 구름 위를 떠가는 비행기가 마치 바다 속을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 같다. 광저우는 얼마 전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곳. 시간이 남으면 잠시 나갔다왔으면 좋았을 텐데.

쿤밍행 비행기를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광저우공항 식당에 들어가 볶음밥 비슷한 것을 시켰더니, 정말로 날아가는 밥에 계란을 약간 섞은 것, 딱 그것만 준다. 밑반찬은커녕 물도 안 준다. 국외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물은 말할 것도 없고 한 상 가득히 밑반찬을 차려주는 우리나라 식당은 거의 천국에 가깝다.

쿤밍공항에 내렸는데 그동안 중국여행에서 못 봤던 광경이 펼쳐졌다. 짐을 찾아 대합실로 나오는데 자신의 짐이 맞는지, 항공권에 붙여 놓은 짐표와 수하물에 매달려있는 표가 일치하는지 일일이 검사를 한다.

분실사고 때문인가? 국내선이라 그런가? 어쨌든 처음 보는 풍경이다. 여름 내몽골 여행 때 통역으로 함께 했던 정군이 공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우리 통역 때문에 북경에서 일부러 왔다. 쿤밍 시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윈난성의 성도 쿤밍

▲ 운남민족박물관 입구 모습.
1월 23일, 아침에 일어나 숙소 근처를 잠시 돌아보는데 지하철 공사를 하는지 약간 어수선하다.

윈난성은 중국 남서부에 있는 성으로 중국 전체 면적의 4.1%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면적의 약 2.5배 정도 된다. 북서부는 티베트 장족자치구, 북부는 쓰촨성, 북동부는 구이저우성, 동부는 광시 장족자치구, 서쪽으로는 미얀마, 남쪽으로는 라오스, 남동쪽으로 베트남과 붙어있다. 위도 상으로는 아열대성기후지만 북서부 등은 고산지대가 많고, 평균 고도가 1980m를 넘어 매우 다양한 기후대를 갖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하루 동안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이한 곳이다.

중국에는 한족을 포함해 56개의 민족이 있는데 윈난성에만 바이족ㆍ나시족ㆍ하니족ㆍ태족 등 25개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 윈난성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다. 가히 윈난성은 소수 민족의 성이다. 그러니 윈난 여행은 당연히 다채로울 수밖에 없다.

쿤밍은 윈난성의 성도다. 2차 세계대전 때 군수물자를 만들던 곳이라, 공업도시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화훼산업 등이 발달한 농업도시이기도 하다. 윈난성 원모현에서는 국사 교과서에 ‘원모인’이라고 나오는, 약 170만년 전의 인류 화석도 발견됐다. 또한 곤명은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해 ‘춘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불린다.

곤명의 ‘전지’는 중국의 6대 담수호 중 하나로 아직도 곤명을 대표하는 단어가 ‘전’이다. 곤명의 토질은 철이 많이 섞여있어서 담배나 차와 같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하다. 윈난의 보이차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갈량이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주었다는 고사 ‘칠종칠금’의 맹획이 바로 이곳 사람이다.

운남민족발물관과 운남민족촌

쿤밍 첫 번째 여행 코스인 운남민족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높이 약 40m의 3층짜리 건물로 1958년 개관했다. 윈난 소수민족의 문화에 관한 자료를 비롯한 약 5만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부관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간단한 강연을 해주었다. 해설을 마친 후에는 소수민족의 노래도 몇 곡 불러서 여행자들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런데 쿤밍은 은근히 춥다. 별명만 ‘춘성’이지 봄이 아니다. 윈난도 이상저온현상인가 보다. 하기야 버스를 타고 오다보니 가로수도 모두 검은 천으로 싸놓았다.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운남민족촌으로 갔다. 주차장이 특이하다. 주차장 사이사이에 야자수를 심어놓았다. 그늘이 생기니 한 여름에는 좋을 것 같다.

운남민족촌은 소수민족 25개 가운데 14개 민족의 주거문화와 생활양식, 복식,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용인민속촌 정도 된다고 할까?

묘족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민족촌을 둘러봤다. 잘 생긴 사회자가 사회를 보는 합동공연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무당이 작두를 타고 춤을 추듯이 칼로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오르내리는 장면도 보여줬다. 쳐다보고 있으려니 모골이 송연하다.

▲ 운남민족촌. 마치 우리나라 무당이 작두를 타고 춤을 추듯이 칼로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오르내린다.
묘족촌에 갔더니 성가도 부르고, 목사(역을 맡은 이)가 기도도 해준다. 그런데 이 묘족이 참 묘하다. 묘족이 당나라 때 강제 이주당한 우리 고구려 후손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김인희가 쓴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그 많던 망국의 유민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의 출판사 리뷰를 보면, 중국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묘족만이 ‘한국과 같은 쌀과 벼라는 단어 사용,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음, 형사취수 풍습 등’ 묘족의 뿌리가 고구려 유민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무려 19개나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도 묘족민이라는데 한국 여성과 거의 똑같이 생겼다. 몇 천 년 전의 일이니 설령 묘족이 고구려 후손이라도 해도 상황이 달라질 건 없겠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일이기는 하다. 홍콩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청하가 주역이 돼 반란을 도모하는 민족이 바로 묘족이다. 젊은이들의 축제를 재현해놓은 공연장은 공연내용이 다양했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남녀가 모여 춤을 추기도 하고, 장대를 두드리며 뛰는 놀이도 했다. 그네를 타기도 하고 남성이 여성에게 꽃을 바치면서 구애하는 장면도 있다. 남녀관계가 공개적이면서 건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두 명의 남녀 여행자가 2인승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저들의 사랑도 영원하기를. 민족촌은 천천히 보자면 하루로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다.

따리로 향하는 길

쿤밍 시내로 나와 월마트 근처 ‘강씨 형제들’ 체인점에서 윈난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가운데 하나인 ‘궈차오 미센’을 먹었다.

‘미센’은 ‘쌀국수’고, ‘궈차오’는 한자로 ‘과교’, 즉 ‘다리를 건너 감’이라는 뜻인데, 옛날 다리 건너에서 과거 공부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열심히 국수를 날랐다는 고사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국수와 고기 등을 모두 쏟아 붓고 먹는데 향채를 빼서 그런지 먹을 만했다. 아, 공포의 향채, 중국 음식에서 향채 냄새만 없다면 그래도 약간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5시간을 달려 따리로 향했다. 부산까지 갈 시간이지만 중국에서 5시간은 이웃 마을에 불과하다. 공룡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휴게소 근처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된 후 휴게소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동네 이름도 모두 공룡으로 바꿨다. 시안의 진시황 용마갱처럼 대대적으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한다면 한다. 오랜만에 레드불스 회사에서 만든 노란 색 캔에 든 박카스 맛 나는 음료수를 사마셨다.

버스 안에서 중국 장예모 감독과 일본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이 공동 감독하고 영화 ‘철도원’의 다카쿠라 켄이 주연한 영화 ‘천리주단기’를 봤다. 여행 떠나기 전 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까지 열 네 차례나 국제민주연대와 함께 하는 공정여행을 주도하고 있는 여행 작가 최정규 선생이 고맙게 디브이디(=DVD)를 챙겨왔다.

영화 ‘천리주단기’

▲ ‘따리’에 다 와가니 해가 저물었다.
다카타는 오랜 세월 동안 소원한 관계로 지내던 아들 켄이치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쿄로 향하지만, 켄이치는 아버지를 만나지 않겠다며 문병을 거부한다. 부자가 화해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던 며느리 리에는 경극 전문가인 켄이치가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대신 건네며 위로한다.

돌아와서 비디오를 본 다카타는 켄이치가 중국의 경극을 촬영하고 있었고, 당시 촬영하지 못했던 ‘천리주단기’라는 경극을 올해 다시 중국에서 촬영하기로 경극 배우 리쟈밍과 약속했음을 알게 된다, 때마침 켄이치가 간암 말기라는 비보를 전해들은 다카타는 병원에 누워 달력의 날짜만을 세고 있을 안타까운 아들 켄이치 대신 비디오 속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국 윈난성으로 향한다.

켄이치의 안내원이었던 링고와 자스민의 도움으로 찾아간 극단에서는 다른 배우가 가면을 쓰고 준비하고 있었고, 리쟈밍은 사생아가 있다며 자신을 놀린 사람을 소품 칼로 찔러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다. 링고와 자스민은 교도소에서의 촬영에 난색을 표하며 다른 사람의 공연을 추천하지만, 곧 아들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한 진심 어린 호소는 국적을 뛰어넘는 감동을 전하고 결국 허가를 얻어낸다.

교도소의 전폭적인 지지로 쉬울 것만 같았던 촬영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거부하는 리쟈밍으로 인해 또다시 무산되고 만다.

결국 다카타는 아들 켄이치가 그토록 원했던 ‘천리주단기’의 촬영을 위해 산골 석촌에 살고 있는 리쟈밍의 아들 양양을 찾아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다카타는 마지막 사랑을 가지고 아들에게 돌아가고, 리쟈밍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을 만나게 된다.(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인용)

‘천리주단기’의 무대 윈난성 리장

영화 제목 ‘천리주단기’는 ‘천리를 홀로 달려가다’라는 뜻이다. 관우가 조조에게 생포됐다가 유비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신이 조조를 위해 싸울 수 없다 하여 탈출한 후, 유비를 찾아 홀로 떠났던 충성과 의리를 담고 있는 ‘삼국지’의 내용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다. 그런데 바로 이 영화의 무대가 윈난성 리장이다.

옛날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골목들이 미로처럼 연결돼있고, 그 미로 곳곳을 옥룡설산에서 내려온 차가운 물이 흐르는 리장의 아름다움이 영화 전편에 넘쳐난다. 아들이 죽기 전 아버지에게 남긴 편지에 나오는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을 숨기면 안 된다’는 구절이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중간에 버스가 말썽을 부렸지만, 기사의 응급처방으로 따리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대단한 솜씨다. 하기야 허구한 날, 카센터의 서비스 카가 절대로 올 리 없는 윈난성의 그 험한 산골짜기를 넘어 다니는 버스의 기사로서, 그 정도의 정비 솜씨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 같다.

따리에 다 와가니 해가 저물었다. 아직 제 집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한 노을과 구름이 어울려 쓸쓸한 풍경을 자아낸다. 홀로 다니는 여행자라면 이 장면에서 눈물이라도 한 방울 뚝, 떨구었을 것 같은, 저녁에서 밤으로 들어가는 시간. (다음 호에 계속)

* 필자의 홈페이지(http://cafe.naver.com/shinhyunshoo)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글ㆍ사진 / 신현수(시인ㆍ부평고 교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