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사회활동을 거의 안 하던 시절, 모든 것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던 시절엔 ‘학생의 보호자’를 가리키는 말이 ‘학부형’이었다.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이다.

이 말 속엔 아버지와 형만 있을 뿐 ‘어머니’는 없다. 아버지 대신 형은 보호자가 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보호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3 학부형께”, “내년이면 저도 학부형입니다” 같은 표현이 대세였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양성평등 인식이 높아지면서 ‘학부모(學父母)’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더욱 그랬다. ‘형’ 대신 ‘어머니’가 학생 보호자로 들어와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제 ‘학부형’은 지난 시절의 용어가 됐다. “고3 학부모께”라고 하는 게 좋겠다.

‘학부형’ 같은 표현은 세상에 여성은 없고 남성이 우선이라고 강요하는 게 된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차별적 인식을 낳게 할 수 있다. 다음 같은 표현은 ‘여성’을 특별히 드러내 문제가 된다. 기사 제목 “국세청 첫 납세자보호관 이지수 여성 변호사 선임”에서 ‘여성’은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표현하면 변호사이기 전에 여성으로 먼제 보게 만들 우려가 있다. ‘여성 산악인’, ‘여성 과학자’에서처럼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넣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여성은 집 안에 있어야한다는 게 지난 시절의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집사람’, ‘안사람’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야했다. 여성은 가려져 언제나 남성 뒤에 있었다. 이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형제애’는 보여도 ‘자매애’는 듣기 어렵다. ‘미혼모’, ‘미망인’, ‘복부인’ 같은 말들은 여성들에게만 해당한다. 이에 대응해 남성에게 붙는 명칭이 없다. 그래서 불평등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이경우 한국어문기자협회장

※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신문과 방송’ 2010년 12월호 실린 글의 일부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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