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하대 사학과 강사
산곡동 부광고등학교 맞은편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초입에서 선포약수터를 만난다. 신선들의 나루터라는 의미의 ‘선포(仙浦)’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수터를 들러 올라가는 산을 선포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수터 근처에는 이끼가 끼고 거의 마모돼서 읽기가 쉽지 않은 작은 비석이 놓여 있다. 1979년에 ‘선포건우회(仙浦建友會)’에서 만든 ‘선포의 신조’와 ‘개발공로자’ 비석이다.

본래 이곳에 있던 작은 샘을 개발하기 위해 선포건우회가 조직돼서 대우자동차의 도움을 받아 현대식 약수터로 개발한 것이 현재에 이르렀다는데, 일종의 구호와 함께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둔 것이다. 선포산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선포산은 호봉산(虎峰山)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호봉산 역시 유래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호랑이가 나올 만한 산세가 아님에도 호랑이 호(虎)자를 쓴 것 역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선포약수터를 거쳐 작은 봉우리를 지나 구르지고개를 건너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하는데, 여기도 호봉산이라고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인근 마을들에도 ‘호봉’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상가들이 다수 눈에 띄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산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포산은 또 함봉산(峰山)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지형도에는 함봉산만이 유일하게 표기돼있어서 어떤 이름이 공식적인 명칭인지 혼란을 가중시킨다. 호(虎)와 함(咸)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함( )이라는 글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글자가 아니어서 혹시 사람들이 호(虎)자로 대체해 사용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위의 세 가지 산 이름 중 호봉산과 함봉산은 서로 다른 봉우리를 지칭한다고 보기도 한다. 같은 산이라도 봉우리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인근 주민들에게서 봉우리마다 차이를 두고 부르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선포산, 호봉산, 함봉산, 이들 산 이름만이 아니다. 부평의 지형은 분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서 동쪽을 제외하고 삼면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있다. 그래서 매일 산을 바라보고 지내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저 산을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하는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을 알고 있더라도 만월산과 주안산, 장수산과 깎까산처럼 무엇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모든 산과 봉우리가 그럴듯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낮은 봉우리의 경우 그저 ‘○○고지’ 정도로만 부르는 경우도 있어서 아예 이름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오르내리며 길을 닦아 놓은 산에는 대개가 제 이름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름을 알고 찾아가는 산과 이름을 모르면서 무작정 올라가는 산은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발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 이름을 읊조리면서 산길을 걸을 때 단순히 등산로가 아니라 이웃과 친구로서 산이 그 넉넉한 품을 열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계양산에서 시작해 부평지역을 감싸 안고 있는 산과 고개들에 대한 문화지도가 적어도 하나쯤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래서 각각의 이름을 부르며 산을 찾아갈 수 있고,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주변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부평의 문화유산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봉우리에 설 때마다 땀을 식히면서 잠시 읽어볼 수 있도록 작은 안내판을 세워두어도 등산객들은 짧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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