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암스님 정암명상치유센터
# 어느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병신춤(病身舞)을 춘다. 보는 사람 없어도 그냥 춘다. 모두가 성한 모습이지만, 마음은 이미 썩은 병신이다”

병신춤은 경상남도 밀양지역에 전해지는 전통춤이다. 병신춤이 처용춤에 기원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밀양에서는 음력 7월 중순을 ‘머슴날’로 정하고 대접하면서 토속적인 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신체 장애인이나 병자(病者)를 흉내 낸 약간은 어설퍼 보이는 춤인 병신춤이 있었다. 하층농민들의 슬픔이 춤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병신춤은 공옥진이 ‘일인창무극’으로 연기하면서 매스컴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채희완 부산대 교수는 “병신춤은 춤출 수 없는 몸을 가지고 춤출 수 있는 데로 나아가는 춤이기에 육체 해방의 의미가 담겨 있다”며 “불구자가 불구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기 폭로의 춤이자 자신이 사는 사회가 비정상임을 허물 잡는 자기비판, 사회비판의 춤”이라고 정의했다.

또 “이 춤은 그늘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원한 맺힌 어둠의 춤이자 그늘진 곳에서 밝은 곳으로 옮겨가는 신명의 춤”이라며 “정상의 몸, 정상의 사회가 될 때까지 누구나 추어야 할 춤이자, 사람과 사람이 화해하고 친교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춤”이라고 말했다.

병신춤의 대가인 공옥진은 뇌일혈로 쓰러져서도 자신의 고통을 무대 위에서 공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공옥진, 이 촌년이 쓰러져 부렀어요. 입도 돌아가고, 손가락도 안 오그라들고, 발도 마비 됐어요…” 하면서 웃는지 우는지 야릇한 얼굴로 춤추면서 재담과 소리를 했다고 한다.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내 이를 강점으로 전환시킨 불굴의 장인정신을 보인 것이다.

#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의 몸을 갖고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보며 항상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장애인 아들을 둔 죄책감으로 노심초사하며 한평생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본 적이 없었다. 자나 깨나 그가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를 뒷바라지 하는데 가슴을 조였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가슴아파하며 힘든 일생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서서히 딱딱하게 굳어지는 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 또한 신체적 장애에 대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 일상생활이었고, 술독에 빠져 맨 정신으로는 살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알콜중독과 함께 수차례에 걸친 자살시도로 가정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일을 나가서도 조금만 감정이 상하면 상대방과 싸움해 피투성이가 되어 들어오기도 하고, 밥을 먹다가도 조금만 기분이 나쁘면 밥상을 날려버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술에 만취된 어느 날에는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음의 문턱까지 간적도 있었다. 얼굴에 진한 어두움이 가득한 그의 부인이 용기를 내어 필자를 찾아온 날은 계양산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 향기가 진동했던 날로 기억된다.

상담 의뢰를 받았지만,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며 오지를 않아, 그를 찾아갔다. 그는 그날도 술에 찌들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선문답(禪門答)이 3개월 동안 이어졌고, 그는 아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루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하며, 마음속에 숨겨놓은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나는 당신이 가진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옅은 관심을 보이며 자신을 위해 그 방법을 알려주면 안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약속하기를 “당신이 이 자리에서 화를 내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앞으로 남은 삶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동의를 얻고는 현대의 ‘에릭슨’적인 상담방법이 아닌 예전 선사(禪師)들이 제자들의 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갈하듯이 핵심을 찔러 세차게 말을 던졌다. 아주 직설적이며, 강하고 심한 어투로 그가 가진 마음의 문제를 단칼에 잘라준 것이다.

“너답게 살아라”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남을 이기려하지 말고, 너의 마음과 다투지 말고 “너답게 살아라!” 많은 부분이 생략됐지만, 이 말을 듣자 그는 순간 엄청나게 화가 난 표정으로 가지고 있던 수저를 이리저리 구부려 내동댕이쳐버리더니 광기어린 모습으로 큰 소리를 내며 한참을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친 호흡과 함께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나 싫었다고. 그를 슬프고 화나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진심어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으며, 그래서 스님의 말씀에 속이 다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응어리를 전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으니, 자신도 한번 행복한 삶을 살아봐야겠다고 말하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