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청, ‘중소도소매업체의 대형마트물류체계 이용’ 추진
유통상인연합회 “대기업이 유통 장악, 중소상인 퇴출 불러”

중소상인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 법안이 통과됐지만, 중소상인들은 좀처럼 안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전통시장과 상점가 소매상들에 이어 이번엔 중소도매상들이 뿔났다.

중소기업청(청장 김동선)이 지난 15일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대형마트를 통해 물류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나서자, 도매업체들은 ‘중소도매업체 자영업자’를 퇴출시키는 정책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중기청은 청와대에 2011년 업무를 보고하면서, 중소소매업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나들가게’ 3000개를 육성하고 대형마트와 농협의 물류체계를 이용해 수퍼조합(체인본부)을 통한 공동 주문과 배송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중소상인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중기청이 대형마트의 물류체계를 이용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이동주 기획실장은 “중소상인을 보호해야할 중기청이 본분을 잊고 대기업이 물류를 장악하게 해 중소도매업체의 생존권을 대형마트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기청이 대형마트의 물류체계를 일선 도소매업계에 가동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5월 중기청은 신세계이마트와 MOU(=업무협약) 체결을 통해 “이마트가 공동구매 대행, 물류센터 활용 등 시스템 지원과 운영 노하우, 컨설팅까지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이는 ‘대형마트와 중소상인의 상생협력 사례’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당시 이마트가 온라인쇼핑몰을 확대하면서 일반 개별 슈퍼마켓들을 상대로 주문ㆍ배송 계약을 체결하고 가맹점 가입을 종용하는 등 공동구매 대행이나 물류센터 활용이 아닌 직접 도매유통업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은 당시 ‘중소도매유통업자들을 고사시키려는 것이자 가맹점가입을 종용해 간판만 바꿔 달면 바로 SSM(=기업형 슈퍼마켓)가맹점이 되는 포석을 만들려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3만 9000여개 업체에 종사하고 있는 중소도매유통 상인들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구조조정을 당장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중소상인들의 거센 반발로 중기청과 신세계이마트 간 업무협약은 일단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중기청이 그 방안을 들고 나온 것.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대형마트와 SSM으로 중소상인들의 피해가 현저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여야가 합의로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대형마트와의 물류체계 구축방안을 중기청이 다시 들고 나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자 중기청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동반성장에 감춰진 중기청의 중소상인 퇴출음모”

지난 11월 국회에서 골목상권과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12월에는 정부가 동반성장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중소상인 보호는 민생 화두이자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중기청이 이에 호응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를 끌어들이자, 중소상인들은 ‘동반성장에 감춰진 중기청의 중소상인 퇴출음모’라며 중기청에 심한 배신감을 드러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재식 본부장은 “3만 9000여개 업체에 달하는 중소도매유통 상인들을 사실상 퇴출시킨 뒤 골목상권을 거대한 유통재벌들이 손쉽게 장악할 수 있도록 중기청이 앞장서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또 “국내 소매업체 9만여개 중 10%도 가입돼있지 않은 수퍼조합(=코사마트)과 주류도매 위주의 체인본부를 대상으로 대형마트와 물류체계를 구축한다는 정책이, 중소도소매업자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물류센터’ 계획에 비해 과연 얼마나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게다가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불투명한 상황이라 기능과 효율성 또한 떨어질 게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중소도매유통 상인들은 주로 슈퍼마켓과 전통시장 상점가 등에 물건을 납품한다. 납품대상은 ‘나들가게’ 융자금 1000만원도 벅차서 신청조차 못하는 상인들이고, 중소도매상들은 도매상과 소매상이 상생할 수 있는 정부정책을 바랐다.

그 중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꼽혔던 게 소매상과 도매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물류센터 건립이었다. 그러나 중기청이 대형마트와 손잡고 물류체계 구축 계획을 발표하자, 중소도매상들은 정부의 ‘동반성장’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제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3만 9000여업체의 도매상과 9만여개 업체의 소매상을 위해 진정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지금이라도 중소상인단체들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 실질적인 중소상인 보호대책을 강구하길 부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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