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상권 사라지고 지역경제 무너지면 ‘슬럼화’”

▲ 버뮤다삼각지대 부평.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을 출시하자 네티즌들은 부평구 소재 롯데마트 입점지역을 연결해 이 지역을 자영업자들이 사라지게 될 ‘버뮤다삼각지대’로 패러디했다. 네티즌들이 패러디한 ‘버뮤닭삼각치킨’에 자영업자들의 씁쓸한 처지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슈퍼마켓ㆍ피자ㆍ치킨…유통재벌 탐욕의 끝은?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이하 상생법)이 개정되긴 했으나, 동네상권은 여전히 유통재벌의 사냥터다.

구멍가게를 집어삼키고 있는 유통재벌들이 ‘피자사냥’에 이어 이번엔 ‘치킨사냥’에 나섰다. 신세계 이마트가 1만 1000원대 피자를 출시한 데 이어, 롯데마트가 5000원대 ‘통큰치킨’을 출시한 것.

이마트가 출시한 피자는 동네 피자가게에서 판매하는 피자보다 규격이 훨씬 크고, 롯데마트가 출시한 치킨은 양은 엇비슷한데 가격이 무려 ‘3분의 1’가량이다. 자영업자들이 이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산곡동에서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공동식(48)씨는 “가게 문을 닫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 대기업이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진출시켜 동네슈퍼를 집어삼키더니 이젠 피자가게에 이어 치킨가게까지 삼킨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했다.

롯데마트 부평점 인근에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방아무개씨는 “두렵다. 모이면 다들 롯데마트 치킨에 대한 공포감을 얘기하고 있다. 치킨을 매일 먹는 게 아니니 손님들이 롯데마트를 이용해 치킨을 사가게 되면 당연히 그만큼 매출이 줄어들게 돼있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부평신문>이 부평구청 통계자료를 통해 확인한 부평구 소재 치킨가게는 290여개다. 여기에는 치킨가게이긴 하나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있는 경우는 누락돼있어, 실제 치킨가게는 300개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게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부부가 일하거나 배달 직원을 둬 2~3명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소득과 고용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을 출시하자 네티즌들이 벌써 ‘버뮤다삼각치킨’으로 패러디해 부평구 자영업자들의 씁쓸한 처지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민주노동당 김응호 부평구지역위원장은 “300개 업체가 영업 중이고 이 업체들이 대부분 롯데마트 영향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가게매출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 1000여명의 일자리가 롯데마트의 치킨 하나에 풍전등화 신세”라고 한 뒤 “자영업자의 몰락은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 다시 지역경제 붕괴와 도시 슬럼화로 이어진다. SSM 대책을 세웠던 것처럼 보호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부평구에는 롯데쇼핑을 본사로 한 롯데마트 3군데, 백화점 1군데, SSM 2군데가 들어서 있다. 여기에 신세계 이마트와 이랜드 2001아울렛까지 합하면, 부평구는 인구 9만 3000명당 대형유통업체가 1개다. 업체 간 출혈경쟁은 곧 자영업자들의 무덤인 신‘버뮤다삼각지대’가 돼버렸다.
부평은 ‘치킨공습’ 전 이미 롯데천국

롯데마트가 ‘통큰치킨’을 출시하기 전부터 부평구는 롯데마트로 인해 버뮤다삼각지대가 형성됐다. 57만명 정도가 살아가는 부평구에는 롯데마트가 세 군데나 입점해있다.

부평구 지도를 펼쳐놓고 소재한 롯데마트 각 지점(부평점-산곡동, 삼산점-삼산동, 부평역사점-부평동)을 연결하면 삼각지대가 되고, 이 삼각지대 안에 부평구 대부분의 상권이 포함된다.

네티즌들은 이 삼각지대를 일컬어 ‘버뮤다삼각지대’를 패러디해 ‘버뮤다삼각치킨’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 버뮤다삼각지대는 그 지역에 들어간 비행기나 배들이 통신이 끊기고 연락두절 상태로 ‘행방불명’되는 곳을 일컫는다.

게다가 부평구에는 롯데백화점 부평점이 있고, 신세계 이마트와 2001아울렛까지 들어서 있어 이미 대형유통업체는 과포화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밝힌 대형유통업체 적정수준이 인구 15만명당 1개라고 했을 때, 부평은 9만 3000명당 1개로 이미 업체 간 출혈경쟁을 야기하고 있다.

인태연 대형마트규제인천대책위 공동대표는 “중소상인들이 4년 전 유통재벌과 생존권을 놓고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관련법 개정운동을 시작할 때 이미 부평구는 (대형마트) 포화상태였다. 당시 전통시장만 영향력이 있을 줄 알았겠지만, 결국 동네슈퍼와 도매유통업자가 잠식당했다. 그 다음 사냥감이 피자였고, 치킨일 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미 제조업체를 집어삼킨 유통재벌이다. ‘통큰치킨’에 맞설 자영업자들의 ‘통 큰 단결’만이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치킨과 피자, 사업조정 가능할까?

대형마트가 동네슈퍼 공습에 이어 피자공습과 치킨공습에 나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다. 앞서 신세계 이마트는 주유소까지 영업하려했으며, 롯데마트에는 ‘카센터’가 들어선지 오래다.

대형마트의 전(全)방위적 지역상권 잠식이 두드러지자, 이에 맞선 중소상인들과 관련 업종들의 반발도 거세다. 전통시장 상인과 상점가 상인, 도소매유통 상인 등 중소상인들은 이미 대형마트와 SSM을 규제하기 위한 법 개정 운동을 전개해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이동주 기획실장은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에 확인해보니 주유소협동조합 측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했고, 중기청은 사업조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가운데 영업시간을 조정한 곳도 있고 자율조정이 이뤄진 곳도 있다”고 한 뒤 “치킨과 피자도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사업조정 신청이 필요하고, 주유소 사례가 있는 만큼 중기청이 적극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통재벌과 중소상인 간 갈등의 핵심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진출과 이로 인한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의 몰락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역시 지난 9월 29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을 발표하면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관행을 개선해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공정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관련,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신규철 집행위원장은 “정부 대책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제도’ 도입이다. 2006년 12월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 업종 제도’를 현실에 맞게 도입해 대기업의 진입을 규제하겠다는 취지지다. 중기청이 2010년 10월 582개 업종·품목에 대해 사업이양을 권고(중기청 고시)하긴 헀으나 대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강제할 수단이 없어 한계가 뚜렷하다”고 한 뒤 “정부와 국회가 경제 불황 시기 중소기업과 중소상인을 육성하고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하루속히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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