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밀린 임금을 달라’며 소송을 낸 여직원에게 황산을 뿌려 중상을 입힌 전자장비업체 대표의 사건, 일명 ‘황산테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여직원 박아무개(28)씨의 얼굴에 황산을 뿌려 중화상을 입힌 혐의(살인미수 등)로 기소된 전자장비업체 A사 대표 이아무개(29)씨에게 살인미수 혐의는 무죄를, 상해 혐의는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또 이씨의 지시에 따라 황산을 뿌린 직원 이아무개(29)씨에게는 같은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하고, 황산을 운반하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등 범행에 가담한 김아무개(27), 남아무개(24)씨에게는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황산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해볼 때 피해 여직원을 살해하려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이상 한국일보 14일자 보도)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서 중요한 것은 징역 몇 년이 아니라,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황산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해볼 때 여직원을 살해하려했다는 점이 증명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성적은 썩 좋지 않았으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말이다. 황산은 확실히 강력한 유해화학약품이다. 실험실 황산이 담긴 통에는 염산과 마찬가지로 해골 문양과 함께 ‘DANGER(위험)’라고 큼직하니 박혀 있으며, 실험하다가 황산을 들이부을 경우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화상을 입게 된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란 말이다.

따라서 고의로 황산을 들이부었다는 것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화상을 입게 될 것임을 ‘미리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살인미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고등법원의 판결에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황산을 들이붓는 일 ‘따위’는 결코 살인미수죄에 해당하지 않으니, 재수가 좋아 피해자의 상태가 대략 양호하면 간단한 합의로 풀려날 수도 있는 상해죄만 해당하니, 합의금만 두둑하다면 ‘욱’할 땐 마음껏 황산을 사용해도 되겠다. 대한민국 법, 참으로 하해와 같이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다.

이토록 자애롭기 이를 데 없어 뵈는 대한민국 법이지만, 또 그렇지만도 않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일명 ‘커터칼 테러사건’의 주인공, 즉 박근혜를 피습한 가해자에게 대한민국 법원은 15년형을 선고했다.

박근혜의 얼굴에선 피도 거의 나지 않았고 피해 직후 흉터조차 남지 않았지만, 그랬다. 황산테러로 지금도 얼마나 더 치료를 받아야하는지 알 수 없는 그 여직원의 얼굴과 커터칼 테러 이후에도 백옥 같은 피부를 자랑하는 박근혜의 얼굴을 대한민국 법원은 전혀 다르게 대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가혹한 법 집행을 또 하나 이야기해볼까? 12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재계 순위 100위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70세 할머니가 혼자 있는 집에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집안에 있는 가구에 빨간 차압 딱지를 붙였다.

“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느냐?”는 할머니의 저항은 “(법이 권리를 주었으므로) 우리는 그냥 문 따고도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당당한 대답 앞에 설 자리가 없었다.

재능교육 비정규직 교사들이 회사 앞에서 하는 집회가 회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법원의 판결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칠순 할머니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를 당연하게 했다.

대한민국 법은 자애롭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은 가혹하다. 누군가에게는 자애롭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혹하다. 박근혜도 아니고 재벌도 아닌 나에게, 대한민국 법은 과연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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