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광산 지하에 갇혀 있던 칠레 광부들이 구출됐다. 이들이 땅 위로 돌아오는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우리의 신문과 방송도 드라마 같은 이들의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33명의 광부가 쓴 69일간의 감동 스토리” “33명의 칠레 광부 모두 구조” “극적으로 구조된 33인의 칠레 광부를 올드트레퍼드로 초대했다”

이 표현들에서는 ‘33명(인)’이라는 말이 모두 ‘광부’ 앞에 놓여 있다. 대부분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어색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미 이러한 표현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꿔 놓고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광부 33명이 쓴 69일간의 감동 스토리” “칠레광부 33명 모두 구조” “극적으로 구조된 칠레 광부 33인을 올드트레퍼드로 초대했다”

이렇듯 숫자를 ‘광부’ 뒤쪽에 놓은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과 두개’ ‘책 세권’ ‘강아지 네 마리’라는 식으로 말한다. 결코 ‘두개의 사과’ ‘세권의 책’ ‘네마리의 강아지’라고 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숫자를 덜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숫자를 앞쪽에 둔 표현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만약 숫자가 강조돼야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네 마리나 되는 강아지’ ‘네 마리밖에 안 되는 강아지’ ‘강아지가 네 마리나’

특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명사 다음에 수가 오는 게 일반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말이 아닌 글에서는 순서가 바뀌는 예가 적지 않다. 외신을 옮긴 기사에서 특히 그렇다. 영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순서를 영어식대로 옮긴 탓이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맞춰 번역하지 않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른 결과다.

칠레에서는 지난 2월 27일 규모 8.8의 강진과 지진해일이 전국을 휩쓸기도 했다. 이때 우리의 신문과 방송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강진과 지진해일로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서 50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즉 많다고도 적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시 앞의 다른 예들처럼 어색함을 준다.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기지 않고 외신을 그대로 반영해 ‘500여명의 사망자’라고 표현했다. “… 500여명이 숨졌다” 혹은 “… 사망자가 500여명에 이르렀다”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이하 생략)

/이경우 한국어문기자협회장

※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신문과 방송’ 11월호 실린 글의 일부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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