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아이가 참치캔을 따다가 손을 베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조심하지!’라고 말할 것이다. 어쩌면 늦게 퇴근한 아버지는 ‘애를 좀 잘 돌보지’ 하고 핀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어떨까? ‘어느 회사 제품이야’, ‘정부는 시민들을 위한 안전관리 하나 제대로 못해!’

전자가 아이가 처한 위험과 재난에 대한 책임을 아이 자신과 가족에게 돌렸다면, 후자는 그 책임을 사회와 국가에게 물은 것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장애, 노령, 빈곤 등 수 많은 위험에 처하고 교육, 주택, 의료 등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위험과 필요에 대한 일차적 의무를 누구에게 지워야 하는가? 개인(가족)인가 국가(사회)인가.

서로 다른 상식

상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지식이다. 그런데 상식이 항상 진리인 것은 아니다. 상식은 공간, 시간,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사상이 압도적일 때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었다. 가난은 게으름, 자조ㆍ자립정신의 결핍 등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빈곤은 죄악이고 인과응보의 형벌로 치부되었다.

국가가 자산조사를 통해 최저 빈곤층을 선별해 아주 최소한의 지원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수치심(stigma)과 억압을 수반했다. 이렇게 해야 빈곤층이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빈곤탈출을 시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별주의’는 이 시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부스와 라운트리는 그들의 유명한 사회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빈곤의 원인이 노령, 저임금, 장애 등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빈곤의 귀책사유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책, 경제정책, 실업정책, 교육정책, 주택정책 등 국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저임금 때문에 빈곤한 워킹푸어(Working Poor)와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노인과 장애인들을 생각해 보라.

이를 바탕으로 서유럽은 빈곤에 대한 책임이 국가의 정책과 자본주의 시장메커니즘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빈곤은 죄악이 아니라 국가정책의 실패일 수 있다!’ 이렇게 상식이 바뀌었다. 국가는 이제 사회적 임금을 통해 시민들의 노령, 실업, 장애, 주택, 의료 등에 따른 사회적 위험에 기본적인 책임을 지고자 했다.

서구의 복지국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복지국가에서 사회적 위험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국가에 있고 시민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권리로 인식했다. 이러한 ‘보편주의’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한국에서는 여전히 ‘선성장 후분배’, ‘가난은 나라도 구하지 못 한다’는 생각이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최근의 의식조사에서 응답자 다수는 실업, 노령, 장애로 인한 빈곤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응답했다. 심지어 사회복지시설ㆍ단체 종사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사회복지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선별주의’가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유럽의 상식과 한국인의 상식은 큰 간극을 보이고 있다.

상식의 재구성

상식은 시민들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중 어떤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정책의 방향과 제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 정치학자는 그 시대의 상식은 지배층의 생각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이론가를 채용하고 지식과 담론을 생산한다. 이런 지식과 담론은 교육과 매체를 통해 반복되고 결국 상식의 자리에 오른다. 상식의 제정권이 그 사회의 지배적인 세력에 있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식을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유럽에서의 ‘가난은 나라만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와 ‘선복지 후성장’이라는 상식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자각한 시민들에게 있다. 이들은 노동조합과 지역사회의 조직화를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말하고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압력 앞에서 국가와 기업가들은 사회복지제도가 양질의 노동력을 생산하고 기업하기 좋은 인프라를 창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시민, 국가, 기업은 사회와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게 되었다.

상식의 재구성은 시민들의 정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어떤 ‘밥’을 얼마나 먹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실천이다. 서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 실현한 무상교육과 무상급식은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어느 정도 평등한 출발선을 만들었다.

이제 상식은 권력자의 이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재구성돼야한다. 정치가 시민들의 온전한 놀이가 될 때, 상식은 시민들의 삶을 위한 것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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