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 음악 영재 허민이 꿈꾸는 작은 희망 이야기

▲ 해 맑은 순수 소년 허민에서, 클래식 색소폰의 거장 허민으로.
“교회 목사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온 가족이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악기와 접하다보니 음악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고,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가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지요. 이후 클래식 색소폰을 배우고 나서 본격적인 영재교육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래 학생들보다 더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았던 허민(부원중 1년)군과의 인터뷰는 그의 아버지 허욱씨가 모두 대변해 줄만큼 어려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색소폰 이야기가 나오면 이내 움츠렸던 표정은 사라졌고, 그야말로 자신감에 가득 찬 색소포니스트로 돌변해 기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도대체 작고 여린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음악적 열정과 담대함이 나올 수 있는 걸까?

잘 하는 것은 즐기는 것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 때를 벗고 중학생으로서 새 꿈을 펼쳐가고 있는 허민군을 인터뷰하러 10월 15일 오후 4시께 부원중학교로 향했다. 방과 후 시간에 맞추다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겨우 그 틈을 헤치고, 교무실 근처에서 교복을 입고 수줍은 듯 서있는 허민군을 만날 수 있었다.

목포에서 전학 온 지 두 달밖에 안 돼 학교생활에 적응이 덜 되서 그랬는지 몰라도, 허민 군은 좀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하고 겸연쩍어하기만 했다. 다행히 아버지 허욱씨가 곁에서 도움을 주는 덕분에 인터뷰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민이가 음악 아카데미 연습으로 밀린 공부도 해야 하고 실력도 향상시켜야 하기 때문에 요즘 들어 부쩍 부담감이 크게 느껴질 겁니다. 집에서도 음악, 학교에서도 음악, 생활 속에서도 음악과 항상 같이 있으니 다른 부문에 대해 쉽게 다가가기가 힘들 수도 있지요.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오사카 국제 콩쿠르에 나가 우승한 것도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허민의 음악적 모태가 되어준 허욱씨는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가족이 합창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다. 허민도 드럼, 피아노, 색소폰 등 악기 다루는 재능이 남달라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에 매진할 수 있었다.

연습기간 두 달, 국내 예선을 거쳐 6개국에서 인정받은 우수한 경쟁자들, 그리고 홀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일본을 간다는 부담감 등이 허민의 오사카 국제콩쿠르에 대한 기대를 접게 했다. 하지만 허민은 당당히 관악기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솔직히 1등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어요.(한참을 생각하다) 긴장도 별로 안됐고, 그냥 제가 즐기는 색소폰을 제 맘대로 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외국 친구들이 (연주하는) 테크닉도 좋고 음감도 뛰어났지만, 잘 한다고 모두 우승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색소폰 연주하는 게 삶의 일부가 되다보니 그냥 즐기면서 대회에 임하게 된 것이 우승까지 하게 된 거라 생각해요”

허민은 이번 국제 콩쿠르에 나가기 일주일 전에 CBS에서 주최한 경연대회에 나가 1등의 경험을 맛보았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관악기 음악영재로 뽑혀 꾸준히 대학교 수준의 연습을 받아 온 터라 그가 말했던 자신감이란 결코 욕심 많은 자기 과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허민은 서울대 관악콩쿠르 1위, 전국 청소년 기악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S기업에서 후원하는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이번 국제콩쿠르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 허민군이 난생 처음 접한 색소폰 클래식 음악은 그야말로 별천지처럼 아름다웠다. 수줍은 중학생 모습에서 180도로 변신하는 허민군의 색소폰 연주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지성이면 감천이라

허욱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쏟아 붓고 있는 듯했다.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면서 오직 아들이 원하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로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역력해보였다.

“어린 나이에 음악으로 벌써 1등을 했으니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이겠지’ 하는 조롱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저희 집은 차상위계층 이거든요. 아시다시피 목사라는 직업이 돈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니 형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듯, 아이의 재능을 눈여겨본 많은 지인들 덕분에 레슨비 걱정 안 하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지요. 한예종 영재 아카데미 교수님과 S기업 관계자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그랬다. 일반적으로 예체능하면 돈 걱정부터 하는 게 모든 부모들의 맘인 것처럼, 그 과정이 결코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종교적 신앙심이 통했는지 몰라도,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영재들을 제치고 색소폰에서 단 1명만을 뽑는 영재 아카데미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런 환경 탓에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이 넘는 연습시간도 허민군에게는 큰 책임감으로 다가와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임했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색소폰,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

짧게 끝날 것 같았던 인터뷰가 어느새 1시간을 채워갈 즈음, 허민군에게 ‘음악이 인생의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제 삶의 밑거름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저만의 행복한 삶이요”라고 말했다.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다운 명쾌한 대답이다.

허욱씨는 말했다. 음악의 기본은 시창(악보를 보고 읽는 것), 청음(음악을 듣고 악보를 기록하는 것), 실기(연주하는 것)를 잘하는 것이라고. 기본이 탄탄하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일궈낼 수 없다고.

허민군은 인터뷰 내내 창밖을 내다봤다. 또래 친구들이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고, 웃으며 떠드는 모습이 내심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학생신분으로 가장 어려운 점은 뭐냐고 물어봤을 때, 계속 ‘음, 음, 음…’만 하고 고개를 숙이던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시큰 거린다.

한양대학교 음대 심삼종 교수를 제일 닮고 싶다고 말하는 순수 소년 허민, 파리국립음악원에 들어가 그 이름도 유명한 아돌프 삭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당찬 색소포니스트 허민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희망을 이어주는 멋진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꿈을 말했다.

이어 그의 영원한 조력자이자 동반자인 아버지 허욱씨는 클래식 색소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관악기인 색소폰도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고급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흔히 색소폰 연주자하면 시장통에서 흘러간 유행가나 연주하는 ‘딴따라’라고 비하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관악도 조기교육이 필요하고, 또 국가적인 지원정책이 시급하다고 여겨요. 실용음악과 대중음악도 중요하지만 색소폰만이 전달할 수 있는 독특한 고급음악의 향기가 있거든요. 클래식 색소폰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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