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라져가는 부평의 옛 동네를 찾아 ⑧ 십정동, 소박한 일상 담은 자연 마을

<편집자주> 좁디좁은 골목길이 있는 작은 동네. 모습은 허름하지만 돌담 사이로 핀 아기자기한 꽃들도 작은 사랑을 가꾸며 사는 곳. 어스름한 초저녁에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 집집마다 밥하는 냄새와 골목골목 아이들이 모여 재잘대며 노는 소리.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곳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걸까요?

재건축과 재개발. 급변하는 시대를 비껴가기라도 하듯 아직 옛날 그 모습, 그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부평의 구석구석을 카메라 속에 담아봅니다. 마음의 추억을 이어보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꿈을 다시 꾸어보기 위함입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한 고향으로 간직될 골목길 추억여행을 함께 떠나봅시다.

▲ 십정동 열우물 마을은 계단 마을이라고 칭할정도로 오르막길이 많이 놓여있다.

 

십정동 상정로 55-1번지(옛 십정동 201-69번지)길, 그동안 다녔던 다른 마을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사람들의 북적거림과 소란스러움이 먼저 반긴다. 예부터 ‘계단마을’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산동네였던 이곳은 어느새 고층아파트가 주변을 에워싸고 바람의 방향마저 바꿔버렸다. 낡고 오래된 기와주택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동네의 모양새는 그 어느 곳보다 따스함이 많이 묻어나 보인다.

아파트와 더불어 생긴 대형슈퍼를 맞대고 허름한 동네슈퍼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슈퍼를 기점으로 횡대로 늘어져있는 골목길을 들어서자 알록달록 색깔로 치장한 높고 좁다란 계단이 예사롭지 않은 마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1년 전부터 ‘거리의 미술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하며 ‘감성마을’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몸짓이었다.

 

▲ 거리의 미술가들과 주민이 함께 그린 마을 벽화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를 마주하고 30년이 넘어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 집 담벼락 밑에 어느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마음속 희망을 상상하며 그려 놓았을, 영화장면에서나 나올법한 창문 모양과 소박한 나무 형상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 옆길로 두 집 건너 사이에 놓인 높고 좁다란 계단식 오르막길이 계속 나온다. 슈퍼 옆에서 과일 노점을 하고 계신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화사하게 치장한 겉모습만 찍지 말고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세요. 얼마 전 홀로 사는 노인이 살다가 죽은 채로 며칠간 방치돼, 그 시체 옮기느라 주민들이 고생 많이 했습니다. 또 밤만 되면 가로등조차 들어오지 않는 폐가 근처에선 불량학생들이 몰려와 담배피고 술 마시면서 소란도 피운답니다. 문화마을이니 뭐다해서 분위기만 살린다고 일상의 어려움들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 이곳은 주거환경개선지역으로 이미 지정됐음에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책조차 나오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좀 기사화해주셨으면 좋겠네요(한숨)”

 

▲ 벽화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오래된 마을 풍경을 담으러 갔던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당신의 말만 늘어놓는 아주머니의 씁쓸한 표정을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여러 개의 층층계단 집들이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고풍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맨 밑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니 이곳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고층아파트에 둘러 쌓인 야트막한 산동네의 오묘한 풍경

 

길을 가다 문득 전체 풍경이 궁금해져 맞은편 고층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우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한 풍경이다. 저 멀리 보이는 경인철도를 경계로 해서 이곳 아파트 부근까지 80년대 달동네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대를 비껴간 이런 장면을 두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감상일까?

 

▲ 낡은 지붕과 새지붕들이 뒤엉켜 있다.

 

망원렌즈로 접사해 다시 들여다보니 촘촘히 박혀있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과 이미 지붕도 다 뜯겨나가 형체조차 알 수 없는 폐가들, 그리고 그 집들 사이로 요리조리 뻗어있는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엉켜있다. 마을도 살리고, 문화도 살리고, 이웃 간의 정도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 계단 위에 또 계단, 그리고 또 계단

 

영화 속 장면 같은 풍경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다시 마을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계단 위에 계단, 또 계단 위에 계단…. 오르막길 위에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모습은 항상 이런 식이다. 숨이 넘어가는 걸 간신히 참고 올라가는데 뒤에서 불쑥 나타난 어린 꼬마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간다.

 

▲ 호박들의 섹시한 포즈

 

열우물로 120번지 골목길. 한참을 올라가다가 눈에 들어온 호박들의 민망한 모습에 잠시 길을 멈췄다. 그 향기가 어찌나 짙게 코끝을 울리는지 금방 허기가 몰려온다. ‘언젠가 밥상에 올라 소박한 웃음꽃을 피우겠지’ 

 

▲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골목길

 

열우물 농장에 닥친 변화의 바람

길은 또 다른 길로 통한다고 했던가. 깊고 오래된 정취를 간직한 작은 산동네 마을을 뒤로하고 길(=경원로) 건너편에 있는 열우물 농장길로 발길을 돌렸다.

 

▲ 예전에는 초가지붕들이 즐비해 있을 단독주택 거리 모습

 

 

▲ 흙에 살리라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이 마을은 전해오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정말 신선하다. 드넓게 펼쳐진 자연농장 주변으로 오랜 세월을 견뎌낸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정렬돼있다.

주말이면 인근 주민들이 이곳에 와서 텃밭을 가꾸며 흙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10월 중순까지 진행되는 마을 진입로 확장공사 때문에 차로 들어오기엔 많이 불편하다. 곳곳에 펼쳐져있는 농장에서 가을 열매를 수확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바쁜 움직임만이 고요를 깨운다. 농장 주변으로 오리, 닭, 영양탕 등 토종음식을 파는 식당가들이 즐비하다.

▲ 할아버지와 트랙터는 오래된 친구다

 

비닐하우스 보수로 손을 바삐 움직이는 할아버지와 그 뒤에서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트랙터가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 그 풍경에 이끌려 할아버지와 잠시 말을 나눴다. 장금석(77)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유일무이한 터줏대감이라며 은근 자랑을 했다.

“내 나이랑 똑같은 삶을 살아온 이 논과 밭도 내년이면 무슨 경기장(=2014 인천 아시안게임 테니스ㆍ스쿼시 경기장)을 세운다고해서 올해가 마지막 동행이네요. 내 고향을 다 버린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쓸쓸해지고 그랴요. 지금도 남아 있는 마을 집들은 원래 다 초가지붕으로 만든 소박한 모양이었지요. 주민들은 쌀농사도 짓고, 축사에서 가축도 키우면서 생계를 꾸려왔어요. 나도 5남매를 모두 출가시켰지만,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마누라랑 둘이서 고향 지키며 살고 있어요”

 

▲ 쌀농사를 지었던 터에 개발붐을 타고 빌라촌이 건설되고 있다.

 

할아버지가 가리켰던 쌀농사 자리 터엔 개발붐을 타고 빌라촌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고요한 마을에 집짓는 기계음 소리가 가득해 귀를 잠시 닫아버리고 싶었다.

 

▲ 숲 울타리로 꾸며진 어느 집 입구에 할아버지 한 분이 폐지 수레를 끌고 나오고 있다.

 

 

▲ 어느 집 마당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온 고목 한 그루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푸른 자연의 향기가 온통 지천으로 깔려있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아담한 나무로 울타리가 쳐있는 그림 같은 입구 길이 눈에 밟힌다. 산길로 올라가는 초입에 오롯이 들어차있는 소박한 집들이 꼭 고향집에 온 것처럼 푸근하다. 집안에서 오랜 세월을 주인과 함께 버텨온 고목 한그루가 위용을 뽐내고 서 있다.

 

▲ 할머니가 일러 준 취나물 하얀 꽃들이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노랗게 익어가는 땡감들의 협연

 

저공해 자연농장’이라는 푯말이 보이는 비닐하우스 안쪽이 궁금해 잠시 기웃거렸다. 무공해도 아니고 저공해라니, 주인장 마음이 참 솔직하다. 짙은 꽃향기가 주변을 감싸고 이름 모를 하얀 꽃들이 햇살에 반사돼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농장에서 일을 마친 할머니는 취나물 꽃이라 넌지시 일러주며, 나물로 무쳐먹으면 참말로 맛난 반찬이라고 웃으며 텃밭 쪽으로 사라져갔다.

함봉로 36번지(옛 십정동 22-2번지)길. 산책로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보니 노랗게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 고즈넉한 풍경을 자랑하는 개량식 한옥주택이 아름답다.

 

 

▲ 식당의 빈 평상들도 가을이 지나감을 슬퍼하고 있다.

 

산을 마주보고 자리 잡은 개량식 한옥주택의 처마 밑에서 참새들이 정겹게 재잘거린다. 풀 냄새, 산새들의 지저귐, 풍경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 그리고 조용히 대답해주는 은은한 메아리가 자연풍광과 어울려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닭백숙, 옻닭, 오리진흙구이 등을 파는 어느 음식점의 좁은 평상에도 가을이 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그늘 쉼터

 

 

▲ 오두막의 소박함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초록 에너지로 가득한 자연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누군가에게 쉼터가 돼주었을 플라스틱 의자와 투박한 솜씨로 만든 작은 오두막만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의 쓸쓸한 기운을 더해주고 있다.

 

▲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마음을 다독여준다.

 

 

▲ 어느 노부부의 슬픈 사랑이야기

 

고즈넉한 자연마을과 잘 어울려 들어서 있는 작은 사찰에서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곳 자연마을 주민들의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저 멀리 노부부가 다정히 산책을 하며 하루의 여정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모습에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연재 ‘사라져가는 부평의 옛 동네를 찾아’를 1차로 마치며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어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한다. 오래도록 골목동네를 취재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아 온 최종규 작가의 후기다.

“제가 느끼기로는, 골목동네를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며(존중)’ 이러한 모습이 언제부터 이와 같이 이어져 왔는가를 곰곰이 살펴(역사를 찾아내어) 이사 걱정이 없이 스스로 동네를 손질하고 가꾸도록 지켜보는 일이 가장 낫지 않으랴 싶어요. 골목동네 텃밭은 동네사람이 스스로 일구었지, 누가 곡괭이를 빌려 준다거나 호미를 내어 주지 않았거든요. 가만히 두기만 하면 동네사람 스스로 동네를 아름다이 가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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