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9월은 특혜와 세습으로 얼룩진 달이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이번 외교통상부 특별공채에서 임용되면서 불거진 이 논란은 말 퍼뜨리기의 최고봉이라 하는 트위터에서 자신의 아내가 입학사정관이라며 선배의 딸의 수시입학을 밀어주겠다는 멘션을 남긴 어느 교육관련 기업 CEO의 트위터 해프닝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거기에 인천의 3선 교육감인 나근형 교육감과 이수영 교육의원의 딸이 특별채용 의혹을 받으며, 특혜와 세습의 폭풍은 중앙 정부부처나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서나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상임을 확인해야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2010년 9월이 특별해서 이런 의혹과 시비가 불거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그야말로 속담에서나 가능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옛말이라는 것을.

부모가 외교통상부 장관이면 외교통상부에, 부모가 교육 관료이면 교육관련 정부기관이나 기업에 채용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그도 안 되면 누구처럼 입학사정관을 부인으로 둔 후배라도 있어야 자식 대학 입학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뉴스에 나오는 유명환 장관이나 나근형 교육감의 기사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그러나 입안이 씁쓸해지는 절망적인 현실을 확인시켜주는, 그야말로 해프닝일 뿐이라는 것을.

이렇듯 부와 권력의 세습, 그로 인한 미래의 세습이 가능한, 과거처럼 검은 돈이 오가는 청탁과 뇌물 비리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권력을 승계할 수 있는 신 계급사회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하루하루 땀 흘리며 내일을 준비하는 평범한 국민들을 절망하게 한다. 아등바등 노력해봤자 장관이나 교육감이나 그도 아니면 어디라도 연줄을 댈 수 있는 스펙을 가진 부모가 아닌 이상, 자식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다는 것, 그것만큼 큰 절망이 어디 있겠는가.

오죽하면 이기지도 못할 경쟁에 부나방처럼 뛰어들어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보다 그나마 ‘경쟁 자체를 포기할 자유’라도 있는 계급사회가 차라리 낫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러한 국민의 절망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공정사회’ 드립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태호 총리후보 지명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와 유명환 장관 딸의 특채임용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이에 따라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자 각종 모임에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만이 이 나라가 살 길이라고 역설하며 공정사회 전도사를 자청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사회란 무엇인가? 이 대통령 스스로 그렇게 표현했듯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각각의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다. 공정하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하니 뭔가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입에 올리면 올릴수록,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유명환 장관의 딸이 외교부 특별채용에서 임용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격조건만 갖춘다면 누구나 임용될 수 있는 자리였고, 우연히도(!) 장관의 딸이 가장 적임자였을 뿐이니까.

강남의 고3이나 도서산간지역의 고3이나 ‘누구나 동등하게 대학 입학시험에 응할 기회’가 주어지므로 이 또한 공정하다. 여기서 명문대학에 강남 고3들이 많이 입학하고 비강남 고3들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결과는, 단지 동등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개인의 탓일 뿐이다.

‘이 대통령의 공정사회’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모의 권력과 재산, 정보력,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유무 또한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능력에 포함되므로, 이 또한 능력의 차이일 뿐 동등한 기회를 해치는 요소가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를 동일한 출발선에 놓고 ‘달리기’라는 특정 동물에게 유리한 종목으로 경쟁하게 한 뒤, 그 결과는 토끼와 거북이 개인의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것.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는 결코 공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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