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사라져가는 부평의 옛 동네를 찾아④ 삼산동, 헌것과 새것의 공존?

<편집자주> 좁디좁은 골목길이 있는 작은 동네. 모습은 허름하지만 돌담 사이로 핀 아기자기한 꽃들도 작은 사랑을 가꾸며 사는 곳. 어스름한 초저녁에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 집집마다 밥하는 냄새와 골목골목 아이들이 모여 재잘대며 노는 소리. 옛 추억이 묻어나는 곳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걸까요?

재건축과 재개발. 급변하는 시대를 비껴가기라도 하듯 아직 옛날 그 모습, 그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부평의 구석구석을 카메라 속에 담아봅니다. 마음의 추억을 이어보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꿈을 다시 꾸어보기 위함입니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영원한 고향으로 간직될 골목길 추억여행을 함께 떠나봅시다.

▲ 삼산동은 20여년 전만해도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지금은 고층 아파트단지가 그 터를 메우고 있다. 저 멀리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이 요즘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지을 땐 싸구려, 팔아먹을 땐 비싸구려!’ 갈산2동과 삼산2동의 경계인 장제로 갈삼사거리에서 삼산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최근 아파트 분양가(=임대에서 분양으로 전환) 문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갈등하고 있는 삼산타운 1단지 비상대책위원회의 현수막이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20여년 전만해도 삼산동 일대는 논과 밭으로 묶인 개발제한구역이었으나, 어느새 택지가 조성돼 지금은 고층 아파트 단지로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아파트단지를 지난 청천로를 건너 영성로 10번지길에 다다랐다. 여기는 행정구역상 삼산1동에 속한다. 삼산1동 한가운데를 흐르는 서부간선수로는 삼산1동을 동서로 나눈다. 사람들은 이 하천을 농수로라고 부르는데, 옛 하천의 정취는 사라진지 오래고 수풀더미로 뒤엉켜 각종 오수와 악취로 주민들의 속만 태우고 있다. 이곳은 수년 전만해도 동네 아이들이 그물망을 들고 고기를 잡고 물놀이도 하던 추억의 장소였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하천 옆으로 핀 해바라기 꽃길을 따라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정리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하루 종일 주워 팔아봐야 3000원도 채 못 받지만, 할머니에겐 그 이상의 의미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가다가 흘리고 또 가다고 흘리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잠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고물상까지 동행했다.

▲ 삼산1동을 동서로 나누는 서부간선수로(=농수로). 정비 요구가 높다. 생태하천 조성이냐, 2차선 도로개설과 수변 공간 조성이냐를 놓고 논란도 따른다.
▲ 하천 옆으로 피어난 해바라기길 사이로 할머니가 무거운 폐지더미와 씨름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농수로 서쪽 편으로 맞붙어있는 삼산초등학교 뒤쪽 담벼락 오솔길로 발길을 돌렸다. 학생 몇몇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땅 붙일 곳이 있으면 어딜 가나 그러하듯 하천 변 자투리땅에 한 할머니가 파 씨를 뿌렸나보다. 김매기를 한다. 조용한 오솔길을 깨우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파밭에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는 할머니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인근 연립주택에 사는 아저씨가 말을 건네 온다.

“이왕 취재하러 온 거면 여기 하천 오염문제에 대한 대책 기사 좀 써 줬으면 좋겠네요. 내가 20일 동안 동영상도 찍어가며 시청과 구청에도 제보했는데, 묵묵부답이에요. 생태공원으로서 보전가치가 충분히 있는데도 손을 놓고 가만히 놔두고만 있으니,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이곳 주민들이 받고 있단 말이오. 가물치, 잉어, 붕어, 메기도 많고 아침이면 학과 오리가 날아들어 그나마 자연의 향기를 주는 곳이었는데…”

▲ 하천을 따라 들어선 작은 오솔길.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 초저녁, 파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아니나 다를까. 하천을 따라 북쪽(=계양구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보니 다리 밑으로 수십 마리의 붕어 떼가 먹이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냄새나는 곳에도 물고기가 저렇게 많이 살다니, 아저씨가 한 말이 빈말은 아닌가 보다. 좀 신경 써서 관리를 잘해주면 생태하천으로 손색이 없을 텐데…’

생태하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아이들이 생각나 하천과 맞닿아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삼산초등학교로 들어가 봤다. 옛날식 건물 그대로의 모습이다. 운동장 연단 사이로 이순신 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좌청룡 우백호의 기개를 뽐낸다. ‘밤이 되면 이순신은 칼로 떡을 썰고 세종은 글을 쓰면서 솜씨 대결을 일삼았다’는 장난 같은 우화가 생각이나 나도 모르게 잠시 웃었다.

▲ 30년은 넘어 보이는 오래된 연립주택의 철조망 모습 위로 고층 아파트가 그 위용을 뽐내는 듯하다. 하늘은 왜 저렇게 시커먼지, 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 연립주택 뒤 허름한 컨테이너가 경로당을 대신하고 있다. 출입문 앞에 울타리로 보호된 작은 텃밭에 심은 상추가 뽑힐 날을 기다리고 있다.
농수로를 뒤로하고 또 다시 오래된 마을 풍경을 따라 걷는데(후정동로 47번길), 재건축 심의가 통과된 연립주택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곳곳에 금이 가있어 보기에도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이곳도 얼마 지나지 않아 통째로 헐리게 되겠지’ 저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엠코타운)가 아래를 내다보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연립주택 단지 뒤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 삼산경로당이다. 작은 텃밭에 세심한 정성의 흔적이 보이는 상추가 자라고 있다. 반찬거리로 하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경로당 안에는 사람 흔적만 남은 채 뜨거운 태양 열기만이 가득하다.

오래된 건물과 신식 건물의 경계 골목길. 골목을 중심으로 왼쪽은 30여년 된 연립주택단지가, 오른쪽은 3년밖에 안된 고층 아파트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내려다보는 주민과 올려다보는 주민들의 오묘한 감정이 공존하는 듯하다.

▲ 경계길? 골목길? 경계를 넘어선 골목길의 모습을 기대한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눈부시게 비추는 햇살아래 피어난 대추나무 열매가 풍성하다. ‘보우하트빌리지’라는 빌라 이름도 참 정겹다. 주택 길을 따라 위치한 작은 공원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네뛰기를 하고 있다. 공원 이름이 사랑샘공원. 한 여름 무더위도 잊은 채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부럽다.

드디어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1시간 이상 발품을 들여 겨우 찾아낸 정취다. 담벼락에 ‘손칼국수’ 푯말이 보이는 것을 보니 단골손님들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유명한가 보다. 식당 뒤쪽으로 나 있는 제법 큰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기르며 음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텃밭 사이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삼산1구경로당 건물이 가로 막는다. ‘재개발은 평화로운 경로당을 부수고 자기 부모님을 거리로 내쫓는 행위와 같다’ 의미심장한 현수막 글귀다. 이곳에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로 주택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삼산1구역이다. 취재수첩에 현수막 글귀를 적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곁에 서서 오래도록 그 모습을 쳐다본다.

▲ 사랑샘공원에서 정을 나누며 놀고 있는 아이들.
▲ 고목, 집을 품다.
▲ ‘재개발은 자기 부모님을 거리로 내쫓는 행위와 같다’
“할아버지 이 경로당에 다니세요?”
“응, 오래됐지. 친구도 있고 할망도 있어서 자주 가곤 했는데, 이젠 사람들이 별로 없어. 재개발 소식이 들려오니까 저렇게 글씨만 써놓고 분위기가 싸늘해졌지. 공청회인가 뭔가 하긴 하는 것 같은데,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반대의견을 쉽게 내지도 못해. 한마디로 소용없는 푸념이야. 소용없는…”
할아버지는 한숨만 몇 번 내쉬고 이내 발길을 돌린다.

경로당을 뒤로 하고 나오는 길목에 의자 두 개와 평상 하나가 시선을 붙잡는다. 아까 할아버지의 말이 귓속에 남아 말없이 의자만 주시하고 있었다. ‘황제 의자와 플라스틱 의자 사이에 놓인 조그마한 평상이라, 평상은 소통을 하는 광장의 의미이겠군’ 없이 사는 사람들의 심경을 헤아려주는 좋은 정치가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 시련을 넘어 꿈과 희망의 뭉게구름이 피어나기를…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며 쌀집, 식당, 병원, 교회들이 들어서 있는 정감어린 시장 골목 풍경이 외롭다. 정밀안전진단 통과. 재건축으로 사라지게 될 저층아파트 사이에 피어난 맑은 뭉게구름. ‘저 뭉게구름처럼 이곳에 사는 이들의 꿈과 희망도 뭉게뭉게 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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