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13년간 외출봉사, 청천2동 김형렬 주부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8월 마지막 주 일요일, 부평역사쇼핑몰에 있는 한 영화관 안에서 즐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3D영화 ‘라스트 에어밴더’를 관람하는 지체장애인 7명이 화려한 액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 중 한 지체장애인 곁에 앉아서 맞장구를 치며 더 크게 웃는 김형렬(38ㆍ여ㆍ청천2동)씨의 표정은 바깥 날씨와는 달리 화창하다.

▲ 13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온 김형렬씨에게 봉사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형렬씨는 1997년부터 한 달에 하루씩 장애인생활시설인 ‘예림원(부평6동 소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결혼 전 다니던 회사에서 봉사단체인 ‘인우회(=80년대에 도화동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했던 인하대학교 학생 동아리)’를 알았는데, 그 후 막연하게 생각했던 봉사활동이 실생활이 됐다. 인우회에서 해마다 뽑는 ‘올해의 인우인상’에 두 번이나 선정될 정도로 그는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형렬씨는 매월 넷째 주 일요일마다 예림원에 가서 외출봉사를 한다. 올해 만해도 인천어린이박물관, 제빵학원, 놀이동산과 리조트, 송도 스마트시티, 인천교육과학연구원에 다녀왔다. 지체장애인은 7세부터 50대까지 연령이 다양하지만 정신연령은 대부분 초등 저학년 수준이라서 장애인 한 명을 두 명의 봉사자가 돕는다.

“결혼 전에는 혼자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지금은 아홉 살, 네 살 된 아이 둘을 데리고 네 가족이 함께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가요. 아이들 낳고 산후조리 기간만 빼고는 빠짐없이 갔어요. 아장아장 걸음마할 때부터 따라다닌 아이들도 이제 당연하게 생각하구요”

큰 아들 지호도 이제는 한 몫 한다. 장애인 친구 손을 잡고 화장실을 데려가거나 식사를 돕는다. 자폐아들의 괴성을 듣거나 지체장애인들의 과장된 얼굴 표정을 봐도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외출 후 월례회의에서도 의견을 말할 정도로 자랐다.

“아이들한테 교육적인 부분을 기대하고 데리고 다닌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의젓한 아이라도 장애인을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호는 조금씩 스미듯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한테 고맙죠”

▲ 형렬씨와 아들 지호(9)가 달팽이어린이도서관에서 책표지 만들기 봉사를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다.
형렬씨는 예림원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으로 다른 봉사를 다닐 때도 지호를 데리고 다닌다. 집 근처 달팽이어린이도서관에서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보낼 책 표지를 만들 때도 지호는 엄마와 짝을 이뤄 바느질을 했다.

봉사활동가로, 환경지킴이로, 살림절약으로, 노래솜씨로, 얼마 전에는 요양보호자격증을 따는 등 동네에서 ‘똑순이’로 소문난 형렬씨를 보고 이웃들의 자녀들도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지체장애인 영화관 외출봉사에 처음 참여한 여고생 진선양이 “말이 통하지 않아 힘들었어요” 하고 느낌을 말하자, 형렬씨는 “그 친구들은 말은 못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은 다 알아들어. 답답할 수도 있지만 말을 들으려 하지 말고 그 친구들의 눈빛과 손짓, 표정을 먼저 봐. 그러면 어느 순간 서로 알아듣게 될 거야”라고 차분히 가르쳐준다.

봉사하러 함께 가고 싶지만, 꾸준히 다닐 자신이 없는 이웃에게는 이런 노하우도 들려준다.
“돕는다는 마음으로는 오래 못해요. 황금주말 아깝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하루 놀러간다 생각해요. 한 달에 한 번쯤은 가족끼리도 나들이 가잖아요? 가족나들이에 그 친구들 손잡고 가는 것뿐이에요. 잘해볼 생각 않고 다니다보니 오래된 거예요. 정 걱정되면, 처음에는 6개월, 1년 단위로 계획을 잡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네요. 그 대신 한 곳으로 지속적으로 다니는 것이 좋아요”

모임 회원 중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어도 계속 예림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부평으로 오는 회원도 있다. 김해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회원처럼.

형렬씨는 슬쩍 “몸으로 봉사하기 힘들면 후원금을 내셔도 된다”며 회원들이 한 달에 1만 5000씩 회비를 내는 걸로 독거노인 2명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덧붙인다. “제 인터뷰가 신문에 실리면 후원하고픈 분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꼭 저에게 연락주세요”라며 명랑하게 웃는다.

13년 동안이나 다녔는데도 산후조리 때문에 못 갔던 시간들조차 미안하다고 말하는 형렬씨. 봉사활동 초기에 몸살이 나서 못가겠다 말하고 집에 누워있는데 그 친구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 당시는 외출봉사가 흔치 않아서 얼마나 미안한지 아픈 것도 잊고 지하철 타고 외출 장소로 가서 그 친구들을 보니까 더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 지난 5월 송도 스마트시티로 외출한 날, 예림원생이 형렬씨의 둘째 아들 정호(4)와 손을 잡고 걷고 있다.<사진제공ㆍ인우회>
“외출봉사자의 수에 따라 외출할 수 있는 그 친구들의 수도 결정이 되는데, 내가 가지 않으면 그 친구들 중 누군가는 외출할 수 없게 돼요. 그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죠. 일반인에겐 일상적인 생활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저는 그래요, 그 친구들이 내 손이 필요하다니까,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은데 손이 부족하다니까, 손을 하나 더 보태주고 싶을 뿐이에요”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그 일요일, 영화 관람을 마친 장애인 친구들은 대형마트에서 양말 한 켤레씩을 구입했다. 봉사자들이 돈은 쥐어줬지만, 장애인들이 직접 양말을 골라 계산대에서 스스로 계산을 마쳐야 오늘의 외출이 마무리 된다. 식품 저울대에 가서 돈을 내는 친구, 양말이 아닌 옷을 사겠다고 떼를 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곁에서 형렬씨와 15명의 봉사자들은 그들이 바깥세상을 당당하게 다닐 수 있도록 눈을 맞추며 손을 잡고 있었다.

후원문의ㆍ010-7141-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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