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자 월간<노동세상> 발행인

6.2 지방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20일 오전,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한 민군 합동조사단이 드디어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북한 잠수정이 “서해의 공해를 통해 우회 잠입해 천안함이 움직이는 항로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단 한 발의 어뢰로 천안함을 타격한 뒤 잠입했던 경로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천안함이 침몰하던 날, 동ㆍ서ㆍ남해에는 한미 합동으로 독수리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지스함 존 매케인함과 머스틴함이 동해항에서 출항해 훈련에 참가했고, 남해 진해항에서는 미7함대 기함인 블루릿지함과 이지스함 샤일로함, 핵잠수함인 콜럼비아호가 출항했고, 서해 평택항에서는 이지스함 라센함과 커티스 윌버함이 출항해 훈련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국 해군은 이지스함 세종대왕함과 최신예 전투함인 최영함, 윤영하함이 훈련에 참가했고, 잠수함 최무선함도 콜럼비아호와 연합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서해에는 미 이지스함 2척과 한국 이지스함 1척을 포함한 최첨단 병력이 집중돼있었고 대잠 헬기와 정찰기, 초계기가 동원되고 호위함과 초계함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답니다.

무기에는 문외한인지라 배 이름만으로 정확한 규모를 알기는 어렵지만, 어마어마한 군함들과 병력이 하늘과 바다 위아래를 누비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 사이를 북의 잠수정이 ‘잽싸게’ 잠수해 와서 천안함이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섰다가 한 방 쏘고 돌아갔다는 말이지요. 세계 최강의 미국과 한국의 레이더망을 뚫고 말입니다. 녹슨 어뢰 파편 위에 파란매직으로 선명하게 쓰인 ‘1번’이라는 글자가 북의 공격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라고 당당하게 발표합니다.

이 발표를 들으며 몇 장면의 역사가 떠올랐습니다. 정권이 불안정할 때 또는 중요한 선거 시기에는 반드시 ‘북의 간첩이나 도발’이 일어났던 그 역사 말입니다.

74년 8.15 경축식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에 육영수 영부인 사망. 수사 결과, 문세광은 북의 지령을 받은 것으로 파악됨. - 74년은 제1차 석유위기의 여파로 물가가 두 배 이상 오르는 등 한국경제가 위기 상황이었고, 72년 유신헌법 제정이후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이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은 위기를 넘겼지요.

83년 미얀마 랭군에서 아웅산 국립묘지 참배 중에 폭발물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만 제외하고 국무위원과 수행원 수십명 사망. 북이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발표됨. - 광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가 학생들과 양심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 사건. 북의 간첩 김현희가 범인으로 발표됨. - 이때부터 12월16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의 화제는 KAL기 폭파사건으로 뒤덮였으며 대선 하루 전날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한국으로 압송돼 대선 아침 신문과 방송은 김현희로 장식됩니다. 김정일(현재 국방위원장)이 직접 KAL여객기를 폭파하라는 친필 지령을 내렸다는 자백과 함께 말이지요.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겠지요. 북을 응징하자는 이야기와 정부의 책임을 묻는 공방이 뒤섞여 이어지고 그 사이에 선거의 구체적 정책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아이들의 무상급식, 4대강 개발 문제와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서민 살리기 대책 등은 방송과 신문에서 묻혀갈 것입니다. 그래도 국민의 현명한 선택을 믿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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