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범상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민주주의는 비판과 토론을 머금고 산다. 자유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밀은 그의 ‘자유론’이라는 명저에서 끊임없는 비판과 다양성의 중요성을 피를 토하듯이 역설하고 있다. 그가 자유주의의 기본 덕목으로 지목했던 사상ㆍ행동ㆍ단결의 자유는 이 같은 다양성과 비판 위에서 성립한다.

비판과 토론은 개인과 사회의 실수를 교정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힘이다. 밀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어떤 사람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자리에서조차도 ‘악마의 옹호자’를 내세워 그 사람을 비판하도록 하는 의식을 갖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즉 성인이 되려는 자는 모든 곳으로부터의 비판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밀은 획일성과 절대적 신의 복종을 강조했던 중국과 캘빈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위해 ‘악마의 옹호자’가 되기를 자처한 사람이다. 그는 소등에 달라붙은 등에(=쇠파리)처럼 아테네의 등에 달라붙은 비판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부패했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건강했을 때조차도 아테네의 성찰을 위해 비판을 지속해야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는 ‘악마의 옹호자’들에게조차 열린 비판의 다른 이름이다. 비판은 허공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공론장)에서 하는 것이고, 공동체의 일에 대해 이견을 달리하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토론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악마의 옹호자’일지라도 배척하지 않고 그와 차이를 즐기는 행위이다. 획일성이 강요되고, 비판이 사라진 장소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광장이라고 할 수 없다.

닫히는 광장과 기본권의 질식

어느 때부터인가 광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촛불집회’와 그 이후에 서울광장은 더 이상 차이를 편안하게 드러내는 광장이 되지 못했다. ‘천안함’ 조사를 위한 합동조사단에 참여했던 한 위원은 합동조사단의 결론과 이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고발됐다.

시민단체 집회 신고는 번번이 거절돼 매번 법원의 판결까지 가야만 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일인시위도 각기 다른 단체가 나와 1인이 넘으면 바로 해산되기 일쑤다. 서울광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년 추모제를 위한 광장이 되지 못했다.

87년 이후 확장돼온 시민들의 광장이 서서히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다가 광장이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이 시점에서 ‘의견의 다양성은 선’이라는 밀의 주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사회가 일부러라도 초대해서 경청해야한다는, 밀이 말한 ‘악마의 옹호자’를 위한 자리는 작금의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토론하는 시민과 정치의 회복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했던 ‘베버리지 리포트’는 영국은 물론 서유럽 복지국가의 텍스트였다. 그런데 이 리포트가 실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리포트를 가지고 도처에서 토론하는 시민들 때문이었다. 실제 베버리지 리포트가 나왔을 때 50~60명 규모의 시민들이 영국 전역의 술집ㆍ교회ㆍ학교강당에서 등화관제나 때론 폭탄도 무서워하지 않고 토론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광장의 전통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에 개화파에 의해 발행된 독립신문에 대한 낭독회를 거리에서, 술집에서 행했던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만민공동회라는 광장에 나와 근대국가 건설에 대해 토론했다. 제1공화국과 이후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은 광장을 열고 토론을 전개했다.

1987년 거리의 민주항쟁과 공장에서의 노동자대투쟁은 비판과 토론을 위한 축제였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런 광장의 산물이고 이제 이 광장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악마의 옹호자’를 토론에 초대하려는 기획을 가져야한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소크라테스의 등에(=쇠파리)는 한국사회 어디에 있는가. 적극적으로 후보들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토론하고 선거에 참여하려는 시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6.2 지방선거는 광장을 위한 중요한 계기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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