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암스님 정암명상치유센터
색안경의 역사를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서양보다는 동양에서 그 역사가 처음 시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430년경 중국에서 연기로 그을려 검은 색깔을 입힌 것이 색안경을 만든 최초의 기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은 시력 교정용이나 태양광선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것은 아니며, 법정에서 판관들의 눈을 가려 마음을 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검댕이를 입힌 수정렌즈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색안경은 발전을 거듭해 1930년대에는 미 육군 항공대에서 조종사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했고, 1950년대 이후에는 패션과 함께 생활 속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색안경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오늘의 이야기는 색안경에 관한 것은 아니다. 편견들, 즉 마음의 색안경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편견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고 있는 완고한 생각이다. 개인이 자주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단계, 즉 어린 시절에 개인이 속한 가족, 혈족, 종교, 학교 등 집단으로부터 편견은 주입된다.

일단 고착되면 이후에 올바른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편견은 더욱 완고해지고 자기방어적인 논리로 한층 정교해지며 자기 생각처럼 고착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런 편견에 기인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如實知見)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듣지(正聽)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와 다툼이 대부분이다. 상대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일 때 두뇌는 경험적으로 축적한 데이터, 즉 선입견이나 그와 함께한 경험의 범주 안에서 성급히 판단해 버린다.

때문에 두뇌는 매순간 있는 그대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해 보지 못하고, 경험으로 각색하고 재구성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싸움들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가까운, 그래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 형제와 친구, 직장동료들 사이의 갈등, 자손들과 겪는 그리고 고부간의 갈등은 대표적인 경우다.

만약 분노의 붉은 색안경을 써보면 주변이 온통 분노로 이글거리며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붉게만 보일 것이다. 슬픔의 파란 색안경을 써보면 온 세상이 슬프고 우울하며 파랗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의심에 가득한 노란 색안경을 쓰면 주변사람들 역시 의심하게 될 것이다. 절망의 검은 색안경을 써보면 삶이 온통 절망적으로 어둡게만 보일 것이다.

태어나 살아오면서 진짜 내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얼마나 될까? 나만의 고유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남의 생각을 교육받아 그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노, 불안, 근심, 의심, 거짓으로 가득한 거추장스러운 색안경을 벗어서 던져 버리자. 투명한 마음으로 자신을 보고 다시 천천히 주변을 되돌아보자. 세상이 환하게 보일 것이다.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내 관계를 보고 주변관계를 다시 둘러보면, 같으나 다른 행복한 사람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색안경을 벗고 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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