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둘레길 탐방 ② 남쪽진달래는 북쪽진달래 생각에 울어 예나

<편집자 주> 계양산은 인천시민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즐겨 찾는 인천의 진산이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웅장하게 내딛다 속리산에서 다시 북으로 뻗쳐 나와 김포 문수산에서 맺는 줄기가 한남정맥이다.

이 한남정맥이 부평평야와 김포평야 한복판에서 크게 한번 용솟음쳐 인천을 굽어보고 있으니 바로 계양산이다. 그 계양산이 골프장 건설 사업 논란에 휩싸여 있다. 계양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아닌 돌아가며 볼 수 있는 ‘돌보는 길’을 지면에 옮긴다.

삼형제봉, 군사시설 맞대고 으르렁

▲ 계양산 남사면 자락 ‘이삭귀개’군락 습지에서 내려다 본 부평, 계양 시내 전경.
남산제비꽃에 잠시 취해 있다가 다시 일어서 다남동으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길이 험하진 않아 아이와 함께 걸어도 무방하다.

걷기 시작한지 한 시간 무렵이 지났을까 본격적인 북사면자락이다. 다남동 가는 길 오른쪽 계양산자락에는 삼형제봉이 사이좋게 자리를 차지했건만, 정상은 모두 군사시설인 탄약부대가 들어서있어 삼형제봉이 서로 으르렁 거리는 것 같다. 삼형제봉 너머 멀리 내다보이는 곳이 김포시와 고양시란다.

다남동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야생초가 저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꽃 모양이 노루 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노루귀는 이미 꽃이 졌고, 대신 현호색이 보라 꽃을 피웠고 개별꽃이 흰 자태를 뽐냈다. 애기나리는 곧 꽃을 피우기 위해 이파리를 먼저 내밀었다.

계양산은 돌이 많은 산이라, 야생초만 바라보며 걷다보면 넘어지기 쉬워 발부리를 조심해야한다. 아울러 아래만 쳐다보면 위를 놓치기 십상이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에서 나와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걸으며 ‘나무를 헤아리되 숲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숲을 보되 나무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한 구절을, 길나서는 사람 신발 끈 묶듯 마음속에 새기고 길을 걷는다.

여름이면 숲이 울창해 하늘이 안 보일정도라는 다남동 숲길을 지나면 계양산의 계수나무 계자를 떠올릴 수 있는 생강나무 쉼터에 이른다. 계양산 야생초 중 노루귀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면 나무 중에서는 생강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고 했다.

계양산 둘레길 탐방 안내를 맡은 ‘계양산 롯데골프장 저지 및 시민자연공원 조성을 위한 인천시민위원회’ 노현기 사무처장은 “계양산 중턱을 따라 생강나무가 여기저기 군락을 이루는데 향이 생강 향처럼 독특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생강처럼 코를 자극하진 않는다”며 “향이 좋아 꽃을 따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고 들려줬다.

꽃은 멀리서 보면 산수유처럼 노랗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보면 산수유와는 전혀 다르다. 워낙 일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생강나무 꽃은 꽃을 피운 흔적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생강나무 꽃차에 대한 아쉬움도 흔적으로만 남았다.

박정희 군사정권도 산림은 보호했건만

▲ 피고개 언덕에서 남사면으로 접어드는 길 입구
생강나무 쉼터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멋진 소나무 터를 만날 수 있다. 소나무가 크진 않아 단지 몇 사람에게만 곁을 내주고 있지만, 그마저도 지난겨울 폭설로 멋진 가지가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내려앉게 돼 인천시가 보조 장치를 해뒀다.

소나무 쉼터를 뒤로하고 물박달나무 군락지를 향해 걷는다. 여기부터가 골프장 부지의 시작이다. 지도상에서도 제법 커보였던 골프장 부지를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체험하니 골프장 부지가 굉장히 넓다는 것을 몸이 먼저 절로 느낀다. 여기부터 피고개가 시작하는 곳까지 골프장부지다.

물박달나무 군락도 꽃이 피는 5월이면 장관을 이룬다. 그보다 물박달나무 군락이 중요한 것은, 물박달나무가 옮겨 심으면 죽는 나무라서 계양산 골프장 예정지인 다남동 북사면자락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계양산이 그 만큼 건강한 산림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박달나무는 계양산 자락인 말등매이산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물박달나무 군락지 아래쪽이 바로 골프장 부지다. 때죽나무 쉼터를 지나 내려가면 나비농장이 있다. 나비농장에 들러 나비구경과 함께 약수 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목상동 솔밭으로 가는 고랑재고개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부터는 조림을 해놓은 침엽수가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고랑재고개를 경계로 다남동과 목상동으로 나뉘는데 곳곳에 숫자를 기록한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 놓은 끈을 발견할 수 있다. 계양산 골프장 조성사업과 관련해 입목축적조사 허위 논란을 빚고 있는 곳을 인천시민위원회가 직접 조사해 표시해 놓은 곳이다.

인천시민위원회는 ‘롯데건설이 작성한 입목축적조사서에서 8번 표준지에 지름이 30cm 이상인 나무가 1그루라고 밝히고 있으나, 조사 결과 40cm 이상인 나무도 있고 30cm 이상인 나무도 5그루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롯데건설은 이렇게 굵은 나무를 빼는 수법으로 입목축적도를 낮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건설 측은 지난해 시민단체가 명예를 훼손했다며, 계양산에 추진 중인 다남동 대중 골프장 사업과 관련해 인천녹색연합 유종반 공동대표와 장정구 사무처장, 인천시민위원회 노현기 사무처장 등 시민단체 간부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목상동에 들어서면 침엽수 조림에서 뿜어내는 솔 향을 만끽할 수 있다. 소나무와 더불어 낙엽송도 제법 굵게 자라 위엄을 뽐낸다. 한국전쟁 이후 민둥산이 된 산을 가꾸기 위해 성장이 빠른 아카시아나무와 낙엽송이 조림의 주종을 이뤘고, 계양산에도 낙엽송이 들어섰다.

노현기 사무처장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군부정권도 산림보호에는 적극적이었는데, 30년이 지나 민주화됐다고 하는 사회에서 계양산 골프장 사업과 4대강 파괴사업 같은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훼손부지에 날아온 맹금류, 롯데에겐?

목상동 솔숲을 따라 내려가면 솔밭이 나온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이곳 솔밭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솔밭에 이르는 길에서 정상 쪽으로 3~5m 올라간 능선에는 골프장 카트가 지나는 길 ‘카트로’가 예정돼있어 골프장이 조성될 경우 애써 가꾼 숲도 반세기를 채 채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카트로가 숲길과 나란히 따라 내려오면 그루 중간에 펄럭이는 현수막을 달고 있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골프장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전개했던 나무다.

목상동 솔밭은 일출 때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는데, 골프장 조성 반대를 위해 소나무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전개했던 이들이 발견한 계양산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했다.

목상동 솔밭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아이들이 이름 지어준 ‘요정의 샘’ 개울을 건너 계양산의 목상동 입구이자 골프장의 진입로이기도 한 ‘굴포천방수로 주거이주단지(=방수로 조성으로 목상동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주거단지)’로 길을 잡는다. 가는 길 곳곳에 핀 산 벚과 저만치 혼자 크게 서있는 사과꽃나무의 하얀 꽃송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목상동 입구에 내려오니 롯데건설 측이 세워놓은 제법 큰 골프장 조감도가 있다. 한눈에 골프장 부지의 규모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조감도는 조감도 일뿐이다. 노현기 처장이 “롯데가 그려놓은 능선보다 더 높은 곳까지 부지가 조성된다. 저 조감도를 보면 마치 계양산을 훼손하지 않고 골프장을 짓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다시 남사면으로 넘어가기 위해 피고개로 향하는 길을 잡는다. 입구에서 피고개로 향하는 길은 계양산 골프장 조성부지 관련 ‘부지협의 논란’과 ‘사격장 안전문제’ 등으로 시끄러웠던 17사단의 모 부대를 지나, 롯데가 고의적으로 훼손했다는 부지를 지나, 도롱뇽 알 학살이 자행됐던 곳을 지나는 길이다.

17사단 모 부대 오른쪽 아래는 벌레를 잡아먹는 식물인 ‘통발부지’가 서식하고 있어 인천시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골프장 조성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했다.

그리고 훼손된 부지는 오히려 계양산 생태에 새로운 흐름을 낳고 있다. 나무가 훼손되면서 평지로 변한 곳에 종종 칡부엉이 등 맹금류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 들쥐나 두더지 등 먹잇감이 생기자 이곳에 천연기념물이 날아들게 됐는데, 롯데건설 측에서는 결코 반겨할 수 없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훼손된 부지를 지나 도롱뇽 알이 무참히 짓이겨졌던 곳에는 올해도 보란 듯이 도롱뇽 알이 무성하게 펼쳐져있다. 생명의 위대함에 다시 숙연해진다. 이곳부터가 둘레길에서 가장 가파른 피고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남사면 진달래는 북사면 진달래가 아파서 운다

피고개를 오르는 길,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닌데도 숨이 차 잠시 중턱에서 쉬었다. 연분홍 진달래가 듬성듬성 피었고, 그 아래로는 어김없이 야생초가 얼굴을 내밀었다. 조금 더 오르니 피고개 정상이다. 왼쪽으로 가면 계양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고, 고개 넘어가면 다시 남사면으로 접어든다. 피고개 정상에 서니 한참 개발 중인 청라지구가 눈에 들어온다.

남사면이 시작되는 길은 진달래가 수두룩하다. 북사면 진달래가 외롭게 피었다면 남사면 진달래는 북사면 진달래를 위로라도 하듯이 곳곳에 피어 등산객을 맞이한다. 마치 북사면 진달래가 골프장 조성 논란으로 마음 졸이는 것을 남사면 진달래가 항의하며 맘껏 눈망울을 흘리는 것 같아 진달래는 속상하다.

진달래 안내를 받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남사면으로 갈수록 산 아래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소리 굉음에 남사면 나무와 꽃들도 편할 날이 없을 것 같다. 제법 걷다보니 폭포가 부채처럼 쏟아진 것처럼 돌무더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람들은 공을 들여 탑을 쌓았다. 돌탑을 쌓은 이들은 무슨 사연을 담았을까?

피고개 정상에서 시작된 남사면 길은 삼림욕장에 이르기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피고개까지 오르느라 배였던 땀이 금방 식어 내렸다. 돌탑을 지나 귀룽나무 쉼터에 잠시 쉬었다. 정상에서 별로 멀지 않은 능선에 경작지가 제법 조성돼있는데 귀룽나무는 이 동네 수호신처럼 웅장하게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벼락을 맞아 쓰러진 나뭇가지들이 다시 하늘을 향해 꼿꼿이 자라고 있다. 기둥은 쓰러져도 가지는 꼿꼿하다.

자동차소리가 더욱 가까워질 무렵 징맹이고개에 이르렀다. 도로를 내면서 절단했던 산을 생태터널을 조성하면서 다시 이었는데 이제 막 조림을 해놓은 터라 동물들이 ‘나 잡아가시오’하고 맘먹기 전에는 다닐 일이 없을 것 같다.

징맹이고개에서 바로 내려가도 되지만 또 따른 벌레잡이 식물인 이삭귀개와 땅귀개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남사면 습지를 지나기로 했다. 아직 때가 아닌 터라 본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8월이 되면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올라온단다.

공촌천의 발원지가 되는 샘을 둘러보고 저 아래 시내를 내려다본다. 부평과 계양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네모 반듯반듯한 콘크리트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가득한 곳,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가야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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