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벤쿠버 동계올림픽의 메달 소식을 제외한다면 요즘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 중 단연 으뜸은 ‘낙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로 나올 정도면 그냥 흘러버릴 소식은 아니란 이야기다.

낙태 문제가 이렇게 이슈화된 것은, 유독 2010년 지금 낙태시술이 많아졌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사실 낙태라는 ‘사실’이 존재했던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옛날 드라마에나 나오던 ‘간장 들이마시기’ 또는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지기’ 등 원시적 낙태 방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숱한 여성들이 숱한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해왔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콘돔이나 피임약 등 다양한 피임방법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낙태시술은 출산을 피하는 유력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혼전 출산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한 여성들은 여아 출산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혹은 육아의 부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낙태 시술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빈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자, 여기서 최근 낙태 문제를 불거지게 한 장본인인 프로라이프라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만든 단체가 낙태 근절을 위해 취한 행동을 살펴보자. 그들의 행동은 단순하다. 이미 불법으로 규정된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색출해서 고발하는 것이다.

좀 이상하지지 않나? 마치 지금까지는 몰랐거나 없었던 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듯 난리법석을 피운 끝의 행동이 색출과 고발이라니. 법으로 낙태를 불법이라 규정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이 불법으로 규정하는 낙태 범위는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낙태를 인정하는 다른 나라의 법과 비교했을 때 매우 엄격한 편이다. 만약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행동이 시사하는 바대로 엄격한 불법 규정과 고발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고리짝에 해결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낙태에서 ‘주어’일 수 없는 대한민국 여성

그러나 현실은 엄격한 법과는 괴리된 채로 흘러가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한다. 나의 사적 경험과 관계를 돌이켜 보더라도 가임 여성 대다수가 낙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니, 말을 정정해야겠다.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할 수밖에 없게끔 선택 ‘당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에 있어 대한민국의 여성은 ‘주어’일 수 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결혼을 담보로 하지 않은 임신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은 그들로부터 직업선택권은 물론이고 사회적 인격권까지 앗아간다. 그들에게 기본적인 시민권은 제한된다. 그들에게 출산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설사 결혼한 여성이라도, 현재의 교육 구조와 노동시장의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육아와 교육에 들어갈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여성에게 임신은 사형선고는 아니더라도 평생을 저당 잡히는 무기징역과 같다. 나는 주변에서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일터에서 임신 사실을 숨겨가며 끝까지 버티다 결국 불러오는 배를 감추지 못해 퇴사당하고 분유값 걱정을 하며 출산일을 기다리는 임신부를 종종 본다.

그에게는 출산 이후가 더 문제다. 아이를 키우며 다닐 수 있는 직장은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반찬값 정도나 벌’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그 어떤 보장도 없다. 거기에 월급의 절반 이상을 요구하는 강도 같은 사교육비는 생존마저 위협한다. 그들에게 출산은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전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을 권리부터 이야기하는 게 옳다. 여성의 몸에 안전한 피임도구를 사용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자연스러워질 때, 그것이 ‘밝히는 여자’나 ‘드센 여자’의 낙인 없이 가능해질 때, 임신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섹스를 하지 않아도 될 때, 여성에게 행복한 출산은 비로소 허락될 것이다.

색출과 고소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에게,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 행복한 출산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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