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태연 <부평신문> 편집이사.
정초부터 쏟아진 폭설은 온천지를 하나의 세계로 물들였다. 세상은 강렬한 은빛 풍광에 뒤덮였고, 사물의 경계조차 허물어졌다. 요란한 도시는 무력해졌으며 일순 정적에 빠져들었다.

눈이 내린 첫날, 동심에 빠져드는 철없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으나, 이후 일주일에 걸친 제설작업에 기진맥진한 심신은 아침마다 ‘눈의 강림’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가득한 승용차들의 머리 위에는 20∼30cm가량의 적설이 솜털모자처럼 얹혀있고, 길에서는 발목을 넘어 정강이가 빠져들 정도의 대단한 폭설이었으니, 어리석은 인간을 향한 자연의 뒷발질처럼 여겨지는 재난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도로에 뿌려진 염화칼슘과 뒤범벅돼 미처 녹지도 얼지도 못하는 시커먼 눈가루들은 마치 부패한 밀가루처럼 도로를 어지럽힐 뿐, 차량의 소통은 여전히 불가했다.

이런 도시의 북새통을 뒤로 하고 지난 8일 강화도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됐다. 강화의 조그만 저수지 옆의 건물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가에 서니 바깥에 펼쳐진 들판과 얼어붙은 저수지가 온통 은빛으로 가득했다. 창문에 가득한 겨울날의 눈밭이 강렬한 백색으로 찬연하니 비로소 재난의 ‘눈’이 마음 밭의 고뇌를 씻어주는 참다운 기운으로 살아나는 듯했다. 겨울날의 서늘하고 투명한 대기를 적시는 절정의 형태를 도시를 떠나니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로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전쟁이다. 도시에서 눈은 재난이다. 우리의 마음 밭을 덮어주는 포근함도 아니고 순백으로 세상을 평등하게 어루만져주는 공정함도 아니다. 그저 민초들을 지하철 플랫폼에서 1시간 이상 발목을 잡고 으름장 놓는 괴팍한 자연신이며, 산동네 주민들 시름 한번 늘리는 인정머리 없는 심술보다.

각자 처지에 따라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 달리 보이듯 눈에 대한 미추와 선악도 갈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순백의 세상에 거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듯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눈사람이 뭉쳐지듯 세상의 흐트러진 마음을 단단하게 묶어주고, 여전히 춥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가슴에 함박눈의 여유와 생기를 불어 넣어주기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또한 세상에 들끓는 모든 욕망도 한 번쯤은 차가운 눈보라에 정화의 세례를 받기를 바랄 수도 있다. 특히 2010년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이토록 차갑고 맑은 백색의 폭설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너무도 많은 인재가 있었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불타버렸다. 정초의 폭설은 마치 불길 속에 던져진 대한민국을 위로하는 하늘의 눈물일 수도 있다.

도시로 돌아오는 날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노제가 있었다. 다시 눈발이 날렸다. 그들이 뜨거운 불길 속에 무참히 사라졌으니 이제 맑고 차가운 눈발로 그들의 고통이 식혀지길 바란다.

아직도 따스한 봄날은 멀다. 그러나 먼 산에서부터 찾아올 봄날의 따사로움은 내 마음속에서 먼저 키운다. 언 땅이 풀려 새로운 풀이 돋아나면 우리의 마음에 내린 폭설의 시련도 걷힐 것이다.

천지사방에 피어날 들꽃이 저 눈 속에서 숨 쉬고 있음을 기억한다면 비록 눈물 나는 세상이지만, 찬바람 날리는 추운 겨울이지만, 시간은 바로 들꽃 같은 우리들의 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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