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는 살아있다] 부평 문화의거리 ‘ROEM(로엠)’ 김문곤 사장

▲ 날이 제법 차지만 김문곤 사장의 가게는 옷을 고르려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김 사장은 장사인생 22년을 살아오는 동안 10년차 쯤 됐을 때 장사가 손에 익었다고 한다.
6개월 동안 아버지 설득해 의류점 개장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무척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 매장 안은 옷을 고르려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모처럼 ‘대박’이 났는지 김문곤 사장의 얼굴에도 함박눈처럼 웃음이 가득하다.

부평 ‘문화의거리’에서 숙녀복 가게 로엠(Roem)을 운영하고 있는 김문곤 사장은 서른을 막 벗어난 1988년 가을,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처음으로 의류가게를 시작했다. 지금 가게가 그가 나고 자란 집이고, 문화의거리 일대는 ‘골목대장 김문곤’이 누비던 골목길이자 당시 부평의 최대 번화가였다.

문화의거리의 산증인이자 장사 경력만 23년에 이르는 김문곤 사장도 장사를 시작할 땐 부친의 반대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지금은 작고하셔서 안계시지만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아들이 걱정되시는 데다 업종까지 바꾼다고 하니 그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일이 잘되니 ‘뭐 이런 장사가 다 있냐?’고 하시면서 흡족해 하셨다”

김문곤 사장이 의류점을 개장하기 전, 김 사장의 부친은 전자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연로한 부친의 대를 이어 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김 사장은 전자대리점 대신 옷가게를 열기로 하고 6개월에 걸친 설득 끝에 동생과 함께 신사복 전문 매장을 열었다.

그해는 ‘3저 호황’에 서울올림픽 개최로 들떠있었다. 경기가 좋았던 때라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가게는 신사복을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 사장은 “그때 브랜드가 제일모직 ‘에스에스패션’이었다. 워낙 장사가 잘돼서 아버지도 정말 깜짝 놀라셨다. 그 땐 경기가 좋았던 때라 더욱 활기를 띠었다. 당시 노동자 기본급이 월 18만원 내외할 때인데, 매장 세일기간 저가 신사복 정장 가격이 22만원 내외였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았다”며 “젊었을 때라 많이 번만큼 많이 쓰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많이 벌긴 했다”고 회상했다.

▲ 김문곤 사장의 꿈은 여전히 부평 문화의거리가 최고 가는 곳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문화의거리는 지난해 대한민국공간문화 대상을 받은 곳이기도 하지만 그와 '문화의거리'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브랜드 경쟁력과 매장 경영노하우

김 사장이 당시 나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경제의 호황기라는 탄탄한 배경도 있었지만, 트렌드를 읽어낸 김 사장의 안목도 한몫했다. 주문에 따라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양복 대신 기성복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때라 신사복 전문 매장이 크게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

그는 “지금 문화의거리 내 수제양복점이 두 집밖에 안 남았는데 사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우리 매장이었던 셈이다. 그분들께 송구하기도 했지만 기성복이 대세였던 때였다”며 “지금도 문화의거리 안에서 브랜드 하나 때문에 매장 사이의 매출에 변동이 생기는데, 그때는 대체로 경기가 좋았던 때라 업종 변경을 통해 흐름을 타곤 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매장도 97년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성장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브랜드였던 만큼 바꾸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김 사장도 결국 2004년 ‘에스에스패션’ 간판을 내리고 10~20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베이직하우스’로 바꾸었고, 그 후 5년 뒤인 2009년 다시 현재의 ‘로엠’으로 전환했다.

김 사장은 2000년 초반부터 지난해까지를 가장 어려운 시기로 꼽았다.
그는 “IMF를 전후해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시작해 지역 상권을 잠식해 들어왔고, 의류매장의 경우 2003년을 전후해 가두상권이 몰락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전후해 전국 각지에 있던 신사복 대리점은 다 없어졌는데, 백화점 같은 곳에 본격적으로 매장이 들어섰던 것과 궤를 같이했다”며 “지금은 모든 자영업자가 어려운 때”라고 말했다.

베이직하우스를 운영하던 때를 김 사장은 ‘숙고의 기간’이라고 했다. 뚜렷하게 잘 되지도 지극히 못하지도 않았던 때지만, 김 사장은 이때 조용히 트렌드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가을 숙녀복을 선택했고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김 사장은 “문화의거리에 숙녀복을 취급하는 매장이 별로 없었다. 나보다 먼저 개장한 이웃들도 있는데, 나도 그 트렌드를 따라갔다고 보면 된다”며 “의류판매업은 브랜드 경쟁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브랜드 경쟁력을 빛나게 할 수 있는 매장 경영 노하우가 있어야한다. 이것은 두 마리 토끼와 다름없다. 그 둘을 갖추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브랜드 경쟁력은 문화의거리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입점하면, 거리 전체가 활성화된다는 것.

그는 “사실 어떤 강한 브랜드가 들어오면 비슷한 영역의 다른 매장이 타격을 입는 것은 사실이다. 소리 없는 전쟁이 거리의 매장과 매장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셈”이라며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을 모든 상인들이 다 알고 있다. 오히려 경쟁력 있는 브랜드가 입점하면 거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나뿐만아니라 다른 분들도 트렌드를 읽은 안목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싸움 ‘진원지’에서 ‘맏형’으로 3년

▲ 문화의거리에서 김문곤 사장도 맏형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의거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상인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상인운동을 시작한 곳이 바로 문화의거리상인회(당시 문화의거리발전추진위원회)였고, 그때 김문곤 사장은 상인회장을 맡아 상인 간 연대를 일궜다.
태어난 문화의거리에서 23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 사장이 가장 애착을 갖는 것은 문화의거리와 문화의거리의 사람들이다.

김문곤 사장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던 이들 중 두 사람이 현재 문화의거리에서 점주가 돼 장사하고 있으며, 5명은 백화점 같은 곳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김 사장 아래서 나름의 경영 노하우를 익혔던 것이다.

김 사장은 “그때는 정말 혹독하게 가르쳤다. 지금은 오래 일하는 직원이라고 해야 6개월에서 1년 내외다. 1년 이상이면 정말 오래가는 것”이라며 “당시에는 보통 5~10년 정도를 근무했다. 그러면서 경영 노하우라고 하기엔 멋쩍지만 사실 ‘옷 장사 잘하는 법’을 어렵게 어렵게 배우게 했다. 그 친구들이 주변에서 사장이 돼있고 의류업계로 진출한 것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 달라 이직이 잦기 때문에 장사하는 법을 전할 여유도 없다. 오히려 이직이 잦아 매번 직원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김문곤 사장은 “의류판매사원도 프로정신이 필요하다”며 “손님을 상대하는 이들은 모두 코디네이터가 돼야한다. 체형과 헤어스타일, 피부색,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그 사람에게 매력 있는 패션을 제안할 수 있어야한다”고 덧붙였다.

김문곤 사장은 지난해 연말 문화의거리상인회 회장을 그만뒀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이어진 3년의 시간은 문화의거리에 뿐만 아니라 국내 상인운동에 상당한 족적을 남긴 한해다.

카드사와 정부를 상대로 한 카드수수료율 인하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됐고, 최근 SSM(=기업형 슈퍼마켓) 입점 규제 운동으로 확산된 대형마트 규제 운동도 이곳 문화의거리에서 시작했다. 김 사장은 당시 문화의거리상인회 회장을 맡아 상인단체 간 연대를 일궈냈다. 그만큼 문화의거리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다.

그는 “아마 3년 중 2년 9개월을 사람들과 매일같이 술을 마셨던 것 같다(웃음). 그만큼 많이 돌아다녔다는 얘기”라며 “문화의거리에 차 없는 거리가 조성된 지 벌써 13년째다.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분수대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문화의거리의 영역도 넓어졌고 가입하겠다는 인접 상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국 상인들이 지금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이라는 정치적 구호까지 외치고 있는데, 문화의거리 상인들이 물꼬를 텄다. 여전히 진행 중인 투쟁이지만 연대하는 상인들이 더 많아졌다”며 “여전히 내 꿈은 내가 태어난 곳이자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곳이 국내 최고로 잘나가는 곳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접한 상권과 연대하고 공동의 상권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일에 할 일이 있다면 늘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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