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보화 번역가
먹고 살 걱정

잠시 먹고 살 걱정을 했다. 남편도 나도 고정적인 일터를 가지지 않아 가끔 우리는 경제적 위기를 맞곤 한다. 이리 저리 일자리를 구하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예전엔 돈 한 푼 없어도 그저 어떻게 되겠지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건만 이젠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이 땅의 현실이 더 어려워져서인지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다.

당장 거리에 나앉을 것도 끼니를 굶을 것도 아닌데 이렇듯 마음이 경제적 현실에 급급한 게 한편으론 엄살 같기도 하고 이제야 세상살이의 쓴 맛을 배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돈 없을 때의 불편함을 이제는 겪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컸다.

이 시대에 빈털털이로 집 밖을 나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돈 쓸 일이 넘쳐나는 거리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빈주머니로 꿋꿋하게 걷는 다는 건 거의 도인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한 달여간의 마음고생 끝에 일자리를 구하자 그간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던 체증이 내려갔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박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일단 내 먹고 살 현실이 급한 게 인지상정인가보다. 마음이 온통 당장의 생계 걱정에 가 있으니 다른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신문도 뉴스도 인터넷으로 둘러보던 세상구경에도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면서 번뜩 드는 생각은 ‘아! MB정부가 이래서 국민의 생계를 자꾸 위협하는구나, 나라꼴 걱정 말고 아등바등 네 먹고 살 걱정이나 하라고 일부러 힘들게 하는 구나’였다.

서민들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고 궁지에 몰아넣어 그들이 정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게 만듦으로써 보다 쉽게 자신들의 정치를 펴나가겠다는 전략이 아니고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뻔뻔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완전 어이없는 사탕발림

얼마 전 정부는 부자감세, ‘4대강 살리기’등의 정책이 비난을 받자 보금자리주택,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등 ‘친서민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면서 2010년 예산안은 ‘사상 최대 복지 예산’이라며 입에 발린 자랑을 해댔다.

그러나 실질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상급식·무상 장학금·장애수당 등 빈곤층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으며, 절차상 더욱 접근하기 어렵게 제도를 비틀어 놓았다.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며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권리마저 위협하는 이 정부의 그럴싸한 사탕발림에 순진한 국민이 그냥 속고 넘어갈 줄 아는 모양이다. 요즘 말로 완전 어이없다.

이 정부의 현주소

세계화와 경제위기 등으로 현대사회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말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가 많아지므로,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고 주장했다. 즉 국가가 사회구성원이 맞게 될 위험을 줄여주는 제도를 시행해야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뒷받침이 있다면, 다시 말해 고용이 지원되고, 의료와 돌봄 등의 사회 서비스가 잘 갖추어진 사회라면 잠시 동안의 실직으로 그렇게 국민이 불안에 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대다수의 국민이 지금 당장 먹고살만하다 하더라도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다. 위험을 제거하고 국민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게 하고 불안에 떨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는 것이 이 정부의 현주소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주기는커녕 최소한의 생계유지조차 더욱 어렵게 만드는 괘씸한 정부에 어떤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해야할까 다 같이 궁리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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