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상인들만 골라 절도 행각

부평에서 작은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최아무개씨는 11월 9일 부산에서 발생한 ‘딸을 이용한 미용실 내 절도사건’을 보고 지난 6월 자신이 겪은 황당한 일이 떠올랐다. 부산 절도 사건의 수법이 자신이 당한 절도 수법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복잡한 미용실만을 골라 들어가서 네 살배기 어린 딸을 소란스럽게 하고는 엄마는 손님들의 가방을 뒤져 지갑을 훔치는, 이른바 신종 ‘네바다이’(=교묘하게 남을 속여 금품을 빼앗는 짓이라는 뜻의 일본어) 수법으로 20여 차례에 걸쳐 67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이아무개(43)씨를 특정범죄 가중법상 절도죄로 구속 수감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CCTV가 설치돼있지 않은 소규모 미용실과 종업원 없이 혼자 일을 하는 미용실만 골라 금품을 훔쳤으며 절도 행각을 벌일 때마다 딸을 데리고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최씨가 지난 6월 8일 당한 절도 수법도 이와 비슷했다. 최씨가 들려준 당시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6월 8일 오후 8시께, 깡마른 체격에 검은 피부를 가진 40대 여성이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열 살쯤 됨직한 얼굴이 통통하고 뽀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아이를 데리고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를 들어오자 아이는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밤이면 어두워 성인들도 다니기 쉽지 않은 가게 뒤편에 있는 화장실을 가르쳐주자 아이는 두려움 없이 능숙하게 화장실을 다녀왔다.

다른 손님이 들어왔고, 아이 엄마는 화장품을 고르고만 있었다. 그 순간 아이는 최씨의 눈치를 곁눈질하면서 엄마의 손등을 꼬집으며 “엄마~ 엄~마” 하며 낮은 목소리로 그냥 가자는 눈치를 보냈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짜증을 내며 “얘, 아빠가 사준다고 할 때 사야지 언제 사냐?” 하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 순간 아이와 최씨의 눈이 마주쳤는데, 최씨는 ‘어쩌면 저렇게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게 순수하고 맑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이 엄마는 최씨에게 “다른 데는 종합세트로 판매하는 화장품이 있는데, 왜 없느냐?”며 더 좋은 화장품세트를 달라고 했다.

최씨가 동네장사라 세트는 없고 선물용은 주문하거나 하면 갖다 주지 그렇게 비싼 건 없다고 하자, 아이 엄마는 그럼 몇 가지 골라서 세트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를 조르던 걸 멈추고 가게 밖에 나가 안절부절 못하며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이 엄마는 “저 애가 가게 안이 답답해 저러는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화장품을 여러 가지 담아 주자 아이 엄마는 “차에서 기다리는 아이 아빠한테 보여주고 카드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가게에 모처럼 손님도 있고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최씨는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그렇게 가고 돌아오지 않았다. 계산해 보니 가져간 화장품은 20여만원 어치가 됐다.

최씨는 어린 아이를 내세워 자신을 믿도록 했으며, 아이의 행동이 ‘자기 엄마가 남의 물건을 가지고 그냥 간다는 것을 알고는 그러지 말라’는 의사 표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고 발생 직후 최씨는 관할 지구대에 신고했지만, 주변에 있던 방범 카메라엔 사건 당시의 현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결과만 통보 받았다.

최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화장품을 도둑맞아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애처로운 눈망울이 안타까웠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다니며 도둑질을 하는 엄마의 행동에 화가 나서였다.

최씨는 “부산에서 일어난 딸을 이용한 미용실 절도사건을 보고 그때 생각이 났다”며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도 조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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