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여성] 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

“따뜻한 타타리(=야생메밀)차 한 잔 드시고 인터뷰 시작해요”

11월 6일, 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 임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더니 따뜻한 차 한 잔부터 건넨다. 곧이어 초롱초롱 발랄한 눈빛이 소녀들과 다름없는 여성들의 구수한 타타리차 같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 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 이순옥 부회장, 이계란 부회장, 최화자 회장, 정효진 부회장.(왼쪽부터)

“1994년도에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인천에 여성문화회관이 생겼어요. 그 시절에는 살림하던 여성들이 어디 가서 취미문화를 배울 교육장이 없었어요. 첫 해에 수강을 신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줄서서 공개추첨으로 컴퓨터 강좌를 들었는데 정말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수강생들이 1000원씩 모아 50만원을 마련해서 1층 로비에 실내 정원을 만들었어요. 그게 우리 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의 첫 활동이에요”

회장을 맡고 있는 최화자(58ㆍ갈산동)씨는 14년이 넘은 일을 추억하며 수지침 배우던 얘기, 일본어와 문예창작 강좌를 듣다가 중간에 포기했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다른 임원들도 한복을 배웠다, 한국무용을 배웠다, 비즈공예를 배웠다며 배움의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순옥(59ㆍ부개1동) 부회장은 “난 여기서 한복을 배워서 한복집을 차렸어요. 한복을 짓고 싶더라고. 하나도 할 줄 몰랐어요. 바늘 꽂는 것부터 여기서 배웠어요”라고 말한다.

이계란(52ㆍ갈산2동) 부회장은 “난 한식요리 배우고 싶은데 신청자가 워낙 많아서 네 번이나 떨어졌어요. 아파트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그래서 그 비슷한 제빵을 배웠지 뭐예요” 한다.

임원 중 가장 맏언니인 정효진(66ㆍ작전2동) 부회장은 “노래를 잘 못 불러서 노래교실도 다니고 예쁘게 춤추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한국무용도 배웠는데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허리가 아파서 못해요. 지난번 경로잔치에서 한국무용으로 봉사하고 싶었는데”라며 아쉬움을 내비치더니 “앞으로는 영어강좌를 신청할 거예요. 국제행사 때 자원봉사 하고 싶거든요” 라며 의지를 밝힌다.

정씨가 잠깐 언급한 것처럼 총동창회는 그야말로 ‘자원봉사’의 산실이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다. 자연보호 정화활동으로 굴포천ㆍ승기천ㆍ선포약수터ㆍ계양산을 청소하고 소외계층을 찾아다니며 문화예술봉사도 한다. 그 뿐이 아니다. 태안에 기름 유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한 걸음에 달려가 기름때를 벗겼다. 겨울에는 난방비 줄이기 위한 ‘내복 입기’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하고, 1년에 5명씩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고등학교 입학금을 전달하는 장학사업도 펼친다. 사랑의 쌀 나누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을 정도다.

▲ 11월 3~4일 진행한 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의 '화수 큰 장날'. <사진제공ㆍ인천여성문화회관 총동창회>

11월 3일에는 자매결연한 인제군 남전1리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서 ‘화수 큰 장날’을 진행했고, 6일에는 갈산복지관 ‘1318 까르페디엠 청소년 해피존’에 월 5만원을 후원하기로 결연했다.

“각자 취미나 자격증 공부를 하러 여성문화회관에 왔다가 자원봉사에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특히 우리는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주어져도 겁날 것이 없어요. 뭘 못하겠어요?”

이계란 부회장의 말에 다른 이들도 자원봉사 경험을 쏟아낸다. 이들이 잊을 수 없는 봉사는 독거노인 생일상 차려주기와 엄마가 없는 아이들 20명에게 엄마 되기다.

총동창회 임원 중 가장 오래 활동한 이순옥씨는 “직접 어르신들 집으로 찾아가서 진지상을 차려드리면 다들 우시느라고 밥을 못 드셔요. 우리도 울죠.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맛있게 드셔주셔서 우리가 더 고맙지요”라며 애잔한 마음을 표현한다.

정효진 부회장은 “엄마 역할이기보다 이모가 되어줬는데 처음에는 눈도 안 마주치던 아이들이랑 눈썰매도 가고 요리도 함께 만들면서 정이 들었어요. 나중에는 요 녀석들이 통제가 안 될 만큼 까불어서 더 재밌었네요” 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에피소드도 많다. 밑반찬 배달하러 갔더니 늦게 왔다고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도 있었다. 사랑의 쌀을 한 집 전해주고 다른 집 전해주려고 잠깐 내려놓은 사이 쌀이 없어져서 급하게 쌀을 사러 다니느라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또 노인들에게 줄 조끼 60벌을 사기 위해 평화시장을 다 뒤졌다. 인터넷으로 사도되지만 조끼 속에도 털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태안에 기름때를 벗기러 갔더니 절벽 아래로 줄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얼마나 추웠는지 온 몸이 다 얼어붙을 지경이었다고. 그런데도 또 갔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눈이 와서 돌아와야 했던 이야기들은 웃음과 안타까움도 준다.

이순옥 부회장은 “자원봉사하면 젊어져요. 진짜예요. 이래서 자원봉사를 그만두지 못해요. 저도 벌써 자원봉사 점수가 1400점을 돌파하고 있어요. 인천시에 등록된 자원봉사자들 중에서 총동창회 거치지 않은 분들은 없을 걸요. 우리 동창회 없으면 인천 자원봉사는 업무 마비예요” 하자 임원들이 한바탕 웃는다.

총동창회 임원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기 때문에 총동창회를 거친 여성들은 동네에 가서도 리더 역할을 한다고 자랑한다. 실제로 이순옥씨는 통장을 맡고 있고, 이계란씨는 부녀회장이다. 최화자씨는 구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강좌 별로 기수 대표들이 자동으로 총동창회 임원이 되고, 약 200명이 자원봉사로 활동 중이다. 50년 만의 추위였다는 11월 3일 화수 큰 장날에도 60명의 동창회원들이 불평 없이 참여했다.

자원봉사 기금은 인천여성문화회관에서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이 낸 회비로 마련한다. 3개월 단위로 1인당 자율적으로 1000원씩 낸다. 임원들은 1년에 1만원도 낸다. 총동창회 임원 수가 600명이나 된다.

최화자 회장은 “티끌 모아 태산이 딱 맞아요. 수강생들이 1000원씩 모은 회비를 밑천 삼아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우리가 허투루 쓰면 일을 못해요. 사용 내역은 항상 월별로 게시판에 공지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수강생들이 1000원을 내는 것이 고마워서 총동창회에서는 3개월마다 있는 신규강좌 신청일이면 새벽부터 줄 서 있는 여성들에게 음료를 나눠준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계란씨가 날씨가 추워져서 집에서 신을 거라면서 덧신을 하나 꺼냈다. 임원들은 좋다, 좋다 얘기를 하더니 “겨울철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덧신 신기 운동도 해야겠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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