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성회 인문학콘서트 두 번째

▲ 페미니스트 김주혜 씨.
인상파 화가 드가가 1848년에 그린 ‘무용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평가된다. 14세의 어린 소녀가 예쁜 발레 옷을 입고 가냘픈 몸으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과감한 구도와 인공적인 조명의 효과를 표현한 것은 명화로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

“그런데, 저 어린 여자아이는 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까요?”
9월 17일 인천여성회 인문학 콘서트 두 번째 시간, ‘그림으로 보는 여성이야기’ 강의를 맡은 김주혜(마포FM 성소수자를 위한 ‘야성의 꽃다방’ 진행자·사진)씨는 7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설명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는 가난한 부모들이 돈을 받고 여자 아이들을 무용단으로 입단시켰어요. 이 무대는 예술의 현장이 아닌 노동의 현장인거죠. 무용단장은 중산층 부르주아 남성들에게 어린 여자 무용수들을 따로 만나게 하기도 했어요. 무대 뒤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보이세요? 그 남자는 오늘 이 어린 소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요. 여성의 시각으로 이 그림을 다시 보세요. 아름답나요?”

김주혜씨는 근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화라고 칭송받는 그림 속에 그려진 여성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미술작품 속에서 여성들의 삶은 언제나 남성의 시각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프랑스의 오귀스트 앵그르가 1814년에 그린 작품 ‘오달리스크’는 유럽 백인 남성들의 관점으로 그린 터키 궁녀의 모습이다. 허리가 심하게 잘록하고 비율이 맞지 않은 신체구조는 그 당시 여자에게 강조됐던 미적 조건을 그대로 담았다.

고갱이 1891년에 미지의 섬인 남태평양 ‘타이티 섬’을 동경하며 그린 그림들 또한 여성이 벌거벗은 몸으로 나오는데 ‘서양화가의 거장전’ 등을 통해 소개될 때는 인상파의 특징이나 고갱의 천재적인 화법 등만 설명될 뿐 주인공인 여성의 삶은 해석되지 않는다.

김씨는 “1865년에 엘프리드 엘모어가 그린 ‘직전에’는 사회적인 금기를 훈계할 때 여성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사회적 풍습을 담고 있어요. 여성은 그림 속에서는 단지 ‘도구’일 뿐인 거죠”라고 말한 뒤 “그림 속뿐만 아니라 화가로서도 여성들은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1923년 수잔 발라동을 비롯해 여성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릴 때도 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나도 그림 그리는 여성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본격적으로 그림 속에 ‘여성의 삶’을 담기 시작했다.

김씨는 “현실에서 우리 여성들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몸매가 꽝이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일도 하고 출산도 하고 육아에 지치기도 하잖아요. 1989년 페미니스트 예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즈’가 ‘왜 여성들은 벌거벗어야만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라는 포스터를 통해 명화로 일컬어지는 작품 ‘오달리스크’ 속 여성의 얼굴에 고릴라 가면을 씌웠어요. 그 후로 그림 속에 여성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참여나 인종차별, 성적소수자들의 시선도 담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라고 설명했다.

▲ 인천여성회 인문학콘서트 두 번째 강좌에 참석한 여성들.
김씨는 1980년 격동적이었던 한국의 사회상을 여성의 모습을 통해 담아냈던 그림패 ‘둥지’의 걸개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여성들이 유난히 아팠던 당시대를 비판했다.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공부해서 똑같이 사회생활을 했고, 똑같이 부당한 사회에 저항하면서 투쟁했던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면 가부장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모습을 담은 ‘현모양처(김인순·1986)’ 그림을 보세요. 학사모를 쓴 아내가 신문 읽는 남편의 발을 닦아주고 있네요”

여성미술가들이 유난스럽게 미술 속 여성의 삶을 담으려는 이유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미술작품들을 벗어나서 여성과 남성,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삶이 반영돼야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그림을 봤을 때 감동이 느껴질 만큼 관객에게 가까운 미술이 진짜 명화라고 강조한다.

김씨는 “관객들도 누구의 규정에 의해 재단되지 않는 시선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느껴야 해요. 그런데 아직 멀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요”라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김씨의 마지막 말은, 강연 첫 부분에 소개했던 윤정미 사진작가의 2009년 작품인 ‘핑크앤블루 시리즈(여자아이 놀잇감은 분홍, 남자아이 놀잇감은 파랑)’처럼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현대의 고정적인 시선을 꼬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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