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이란 게 있다. 한마디로 잘 걸리면 천국(福)이고 아니면 지옥(不福)이라는, ‘모 아니면 도’, ‘A or not A’라는 이야기다. 천국과 지옥 사이, 모와 도 사이, A와 not A의 사이는 없다. 대박이 나든 쪽박이 나든 둘 중 하나다.

복불복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건 2년 넘게 주말TV 오락프로그램의 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 덕이다. 남자출연자 6명이 1박2일 동안 여행을 떠나는 게 이 프로그램의 주된 형식이다.
그들의 여행은 복불복으로 시작해 복불복으로 끝난다. 여행지 선정부터 교통수단, 용돈, 식사, 잠자리 등 모든 것을 복불복 게임의 승패로 결정하고 게임의 승자와 패자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게임에서 승리한 출연자는 환호성을 지르며 이렇게 외친다.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

그래, 나만 아니면 된다. 좀 전까지 한편이 되어 의기투합했던 동료일지라도 복불복 앞에서는 금세 얼굴을 바꾼다.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한다. 까나리액젓을 먹지 않기 위해서, 야외취침을 피하기 위해서,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박2일의 엎치락뒤치락 복불복을 보며 신나게 웃다가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기세등등한 그들의 외침을 들으면 문득 섬뜩해진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직접 듣지는 못하더라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는 외침이기 때문이다.

용산참사로 무고한 시민들이 처참히 죽어나갔을 때도 그랬다. 쌍용차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파업을 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최근 금호타이어노조가 파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그들은 불길 속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절규하고 있었지만,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끊긴 공장에서 대치하고 있었지만, 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절규 때문에 내가 산 주식 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 침묵 속에는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는 소리 없는 외침이 들어 있었다.

그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복불복의 사회다. 1박2일의 출연자들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잘못 걸리면 까나리액젓과 소금식혜를 마시고 엄동설한에 야외취침을 하듯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하루아침에 삶터를 빼앗기고 일터를 빼앗긴다. 어디 호소할 곳도 없다. 이웃이고 친구인 줄 알았던 이들은 침묵으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친다.

정말 그럴까? 나만 아니면 될까? 내가 용산의 철거민이 아니니까, 내가 쌍용차 노동자도, 그 가족도 아니니까 괜찮은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고 안전한 게임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일까?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 특성 상 6명 중 누군가는 반드시 불복에 걸리게 되어 있다. 이번 주에 안 걸리면 다음 주에 걸린다. 2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6명의 출연자 중 야외취침에 단 한 번도 안 걸려본 자는 없었다. 미친 듯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특성 상 우리 국민 대다수는 ‘불복(不福)’의 대상자다.

재벌가 자식이 아닌 이상, 언제고 나는 용산의 철거민이 될 수 있고 정리해고에 맞닥뜨린 쌍용차 노동자가 될 수 있다. TV 오락프로그램의 야외취침이야 촬영이 끝나면 원상회복이 가능하지만 우리네 인생의 야외취침은 회복불가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박2일의 불복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거액의 출연료가 있지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불복 뒤에는 낭떠러지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제발 나는 걸리지 말아다오”라는 기원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잔인한 침묵의 환호로 되새김질한다.

그러나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던 1박2일 출연자들이 몇 주 전 반란을 일으켰다. 저녁식사를 걸고 복불복을 통과한, 즉 게임에서 승리한 팀이 PD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우리는 진 팀과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어 먹겠다” 6명 출연자들은 이긴 팀 진 팀 할 것 없이 함께 저녁 찬거리를 걸고 게임을 진행했고, 그렇게 얻은 찬거리로 누구 하나 굶는 사람 없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만 아니면 돼”를 외쳤던 게임의 승자가 패자와 손을 잡으니 프로그램의 절대권력 PD와 거래할 수 있는 협상력이 생겼고, 그 힘으로 6명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복과 불복 사이, 모와 도 사이, A와 not A 사이, 대박과 쪽박 사이에 새로운 영역을 만든 것이다.
복불복의 시대,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제의 “나만 아니면 돼”라는 환호는 오늘의 야외취침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게임의 규칙을 넘어서 맞잡은 연대의 손, 복불복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 이영주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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