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성 (72·부평3동)

▲ 권태성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어주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주변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때마다 친구나 친지들은 우리정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역사적 고찰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예식장도 따로 없고 식당도 없었던 그 때에 ‘결혼식’은 마을의 잔치와도 같아서 어느 집에 혼사가 있을 때는 이웃과 친지들의 형편대로 술을 가져오거나, 감주(식혜)를 가져오거나, 떡이나 고기를 사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사를 치루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이웃들이 준비해서 혼주를 돕는 따뜻한 ‘품앗이’ 전통이 내려왔다.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지금에 와서는 ‘축의금’으로 편리하게 바뀌었지만, 때로는 그 의미가 변질돼 공연한 부담을 주기도 하고 낭비가 되기도 한다. 나는 아름다운 우리 전통을 살리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해결하는 방안으로 ‘청첩장에 계좌번호 써놓기’를 제안한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청첩장을 받아들고 고민을 하게 된다. 참석해서 축하해야 마땅하나 그냥저냥 아는 사이라면 굳이 참석할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보통 참석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며 바쁜 일정 중에도 참석하곤 한다. 서민들은 대부분 혼자 결혼식에 참석할 경우 3만원을 축의금으로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웨딩홀 뷔페 식사값이 보통 1인당 2만 5000원가량 든다고 하니 하객은 시간 내서 참석하고 축의금까지 내었지만, 혼주에게는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경우, 청첩장에 적혀 있는 계좌번호를 보고 2만원 정도만 계좌로 보내면 서로에게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할 경우 축의금을 남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청첩장에 계좌번호가 적혀 있으면 직접 보낼 수도 있어서 제대로 전달됐는지 의구심도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혼식에 하객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민망하게 계좌번호를 어찌 써놓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적는 것으로 바쁜 하객은 혼주에게 따로 계좌번호를 묻는 번거로움도 없어지고, 꼭 참석할 하객만 참석하니 혼주는 큰 예식장과 큰 식당 사용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은 결혼식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한 달에 두 세 건의 청첩장을 받아들고 축하의 마음은 잠시 ‘5만원 해야 하는 집인데, 10만원 받은 집인데’ 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런 때에 ‘청첩장에 계좌번호 적기’를 적극 활용해서 5만원 보낼 집은 3만원으로, 10만원 보낼 집은 5만원을 보내는, 하객은 부담이 없고 혼주도 이해하는 풍토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면 양가에서 꼭 모실 손님만 모시고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전통문화도 이어지고, 검소하고 조촐하게 혼사를 치루는 문화도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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