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보화
번역가
선선한 바람이 분다. 무에 그리 정신이 없었든지 내 삶도, 주변의 삶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쫓기듯 보낸 지난여름이었다. 나라의 두 어른이 돌아가시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나날들을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지, 나만 이리 여유가 없는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갗을 스치는 새벽의 서늘한 기운에 마음을 다잡고 갈수록 험악해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제대로 살아갈까 궁리해 보는 요즘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살아남기’라는 살벌한 용어가 이 시대를 표상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몇 해 전 모 출판사에서 내놓은 어린이용 학습만화 ‘000에서 살아남기’라는 시리즈가 날개돋인 듯 팔려나갔다. 여유롭게 즐기는 삶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하는 삶을 아이 때부터 주입시켜야하는 신자유주의식 교육방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목이다.

맘 편히 희희낙락하다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강박증, 지금은 먹고 살 만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 어른 너나 할 것 없이 각박한 일상에 지쳐 있는 것 같아 다들 안쓰럽다.

요즘 들어 이십대 초반의 여행길이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 때는 여행이라기보다 길에서 좀 헤맸던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잘 몰랐다. 혼자서 중남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괜히 내 삶이 부끄러웠다. 일하지 않고 여행을 한다는 게 왠지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행은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낙천적으로 삶을 즐기는 문화, 삶 속에 뿌리를 내린 예술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쿠바가 그랬다. 물질적으로 가난해보였지만 거리엔 사랑과 혁명을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트럭운전사도 식당 웨이터도 여유롭고 행복해보였다. 그저 선망의 눈으로 보았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분명 어떤 자부심 같은 게 엿보였다.

그들보다 훨씬 먹고 살만한 우리네 현실로 돌아오면 그런 넉넉한 표정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드물다. 기본적으로 자동차에 집안엔 온갖 세간살이를 갖추어 살고 있지만 왠지 외롭고 허전해 보인다. 끼니 걱정을 할 살림도 아니건만 무언가에 쪼들려 있는 듯 보이는 건 왜일까.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네 삶이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음을 거리의 표정으로 실감한다. 설상가상 나라의 뱃사공이 엄한 대로 노를 젓고 있으니 앞으로의 현실은 더욱 암담해 보이기만 해 어쩌면 좋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다고 역병 같은 불안을 너나할 것 없이 안고 전전긍긍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결국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 내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팃낙한’이라는 스님이 교도소에 갇힌 한 젊은이에게 준 가르침이 생각난다.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오렌지를 태어나 처음 먹어보듯이 그 맛을 온전히 느껴보라! 이미 가버린 날도 앞으로 올 날도 아닌, 지금 여기에 온전히 충실하라! 마음을 열고 다시 오지 않을 순간순간을 제대로 느끼며 살라는 그 가르침을 매일 매일 가슴에 새기며 살고 싶다. 세상의 평화는 더욱 요원해 보이고 결국 내 안의 평화를 이루고 그것을 세상에 전파해가는 것만이 나도 살고 세상도 살리는 길이겠기에 이 가을 나는 내 안의 평화를 위해 정진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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