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깊은 번뇌의 바다에서 한평생을 고통의 풍랑과 싸웠으나, 결국 따스한 햇볕으로 민족을 아우른 가장 현명한 정치지도자였다. 바로 그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한 해에 두 명의 지도자를 잃은 국민들의 가슴은 터져버릴 듯하다. 국민에 대한 절절한 애정으로 팔순 노구를 일으켜 민주주의의 회복과 민족통일의 완성을 호소하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한평생을 조국의 고통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해왔던 그가 영면의 순간까지 깊은 고뇌 속에 조국의 앞날을 바라봐야 했으니, 남은 자들의 비탄이 어찌 없겠는가? 오늘, 타는 듯한 8월의 불볕아래 그를 보내는 국민들의 눈물도 함께 뜨겁다.

세상의 빛과 어둠을 가르는 역사의 이정표

세상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 역사에도 빛과 어둠이 상존하며 쟁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바로 그 빛과 어둠을 가르는 역사의 이정표였다. 죄 지은 자들은 그를 두려워했고, 그의 빛이 세상을 비추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김대중이라는 정의로운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역사적 동력으로 작동하지만, 그래서 어둠의 세력은 빛을 제거해야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차량 암살 시도, 일본에서의 납치 살해기도 사건 등은 그들의 간교함과 극악함 그리고 두려움의 심연에서 나온 한편의 광란극이었다. 가택연금과 망명 그리고 다시 투옥과 사형선고 등, 그의 자유가 감금당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와 시민자유의 투옥이었고 그가 법정에서 받아야 했던 사형선고는 민주주의와 시민자유에 내리는 총 든 자들과 간교한 법률가들의 살해 행위였다.

이처럼 동시대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한 사람의 운명과 고스란히 일치된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민족통일의 깃발을 들었을 때 곧바로 빨갱이가 되었으며,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외치는 모든 자유민이 그와 함께 좌익으로 붉게 채색 당했다.

민족에 대한 깊고 넓은 애정

그러나 그는 어떤 탄압이나 가혹한 비난에도 통일과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 투쟁과 걸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외침은 포장된 유세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운명에 대한 메시지들이었다. 그의 손짓은 정적을 향한 적대적 조롱이 아니라 그의 신념을 각인시키는 강력한 실천의 회오리였다. 그것이 국민과 민족 구성원의 가슴을 움직였으며, 세계를 격동시켰던 것이다.

특히 민족통일에 대한 그의 신념과 실천은 그의 정치사상과 진정성의 핵심이다.
과연 진실이 아니고서 강력한 상대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의 민족통일을 위한 진정성은 북한의 지도부까지 움직였다. 국가 원수가 지구상의 가장 적대적인 세력의 영토로 뛰어 들어간 용기와 그들로부터 받은 환대는 민족에 대한 깊고 넓은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통일이야말로 민족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과제임을 이미 수십년 전 인식한 선구적 정치의식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런 철학과 현실인식을 받쳐준 국제적 영향력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현실 가능한 영역으로 이전시켰다. 악의 축으로 북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조차 설득한 유일한 지도자가 김대중이었던 것이다.

양심은 말이 아닌 행동

그러나 민족의 거목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복잡한 기득권세력의 늪에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 써야했다. 평생을 따라 붙었던 좌익누명과 대통령병 환자, 지역주의자 등의 오명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에게 던져진 온갖 모욕이 그를 더럽힐 수는 없었다.

오히려 천박한 자들의 능욕조차 그의 역사에 다가가면, 신산스런 그의 생애를 역설하는 가시면류관 같은 소품으로 변해 버릴 뿐이었다. 고궁 담벼락에 새겨지는 세월의 이끼처럼 무력한 장식물이 될 뿐이다. 단지 김대중을 능욕한 자들의 이름 석자에는 진실을 가리고 사익을 위해 역사와 민중을 능욕한 당대의 모리배라는 역사적 각인만이 뚜렷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속인들의 이런 분노마저 그분은 거두라 할 것이다. 가시는 길에 그는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조롱한 무리들의 허세와 위선조차 감싸 안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미 자신을 고문하고 살해하려 했던 자들마저도 모두 용서했던 분이 아닌가?

그런 분을 보내며 또 한 번 우리는 눈물로 그의 앞길을 적신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포기와 절망 그리고 지난날을 떠올리는 회억의 눈물이 아닐 것이다. 그가 마지막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력으로 우리에게 남기고자 한 메시지는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던가? 그렇다! 양심은 ‘말’이 아니라 ‘행동’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해 ‘지금 행동하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 분을 보내며 흘려야하는 눈물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 인태연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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