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희
비정규대안센터 소장.
8·15의 추억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소중한 기억이 있을 게다. 나에게도 ‘나이 서른에 우린,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무엇인가를 사랑했던 경험이 있다.

‘현장에는 민주노조, 조국에는 평화통일’. 말만 들어도 가슴 한쪽에서 무언가 뭉클하게 올라왔던 그 시절, 내 나이 서른의 추억이다.

당시 통일이야기만 하면 잡아갔던 엄혹한 시절, 인천지역 노동자들이 통일운동을 해보자며 만들었던 실천 공동체, 그 이름이 노동자통일대 ‘백두’다. 지금 그 이름을 아는 이 얼마나 있겠느냐, 만은. 부끄럽지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상에서 놓치고 있다가 8·15일만 되면 추억과 함께 통일을 떠올린다.

전혀 새롭지 않은 정부의 신평화구상

그러나 올해 8·15는 예년처럼 추억에 잠기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고 두껍다. 전쟁 위기감이 감도는가 하면, 남북 사이의 대화는 단절되고 교류사업 마저 중단되거나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들음직한 노동자·여성·청년학생 등 민간주도의 남북통일행사 일체가 중단된 듯하다. 바람 한 점 없이 연일 계속되는 폭염처럼 덥고 답답한 남북관계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 64돌 8·15 경축사를 신문 기사로 접하면서 폭염보다 더한 숨 막힘이 느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군축을 전제로 한 대북 지원을 담은 신(新)평화구상을 언급했다.

모든 것을 다 논외로 하더라도 군축이란 군사적 신뢰 없이 가능하지 않다. 군사적 신뢰는 정치적 신뢰를 기본으로 해 비정치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가 활성화될 때 가능한 것이다. 하다못해 티비 드라마에서조차 고려와 여진이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형제국을 선언하고 막장(지금의 경제특구)을 통해 무역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다.

6·15, 10·4선언은 과거 정권과 함께 묻혀가는 역사정도로 취급되고, 여전히 북핵과 연동한 관계 개선만을 현 정부는 통일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친구하자고 하면서 ‘뭐하면 친구할게’ 하는 것은 관계를 맺자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자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신평화구상이 전혀 새롭지 않다

신(新) 평화구상이 발표되자 실현가능성에서부터 남북관계를 개선할 의중, 그리고 올바른 해법인가까지, 갖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향적인 통일정책 내올 때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과 5개항 합의 등으로 인해 현재 국면을 남북관계, 북미관계에서 대화국면이 열릴 중대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지금이 남북관계를 풀어갈 때라는 것이 통일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며, 시민사회는 정부가 보다 전향적인 통일정책을 내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은 공존과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21세기 통일은 공존과 평화이다. 어떤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 또 어떤 일방만이 살아남는 사회도 바라지 않는다.

지난 10년을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대립과 전쟁이 아닌 공존과 평화를 소중한 가치로서 추구하고 경험해왔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식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저항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현 정부는 알아야한다. 이제라도 민심의 향방을 이명박 대통령이, 이 정권이 직시했으면 한다.

‘어리석은 이는 자신의 행동이 옳은 줄로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충고를 듣는다(잠언 12:15)’는 성경 구절이 있다. 지금의 국면에 필요한 것은 지혜로운 정부다.

소통하지 않는 정부, 닫혀버린 광장, 막혀버린 남북관계에서 지혜로운 위정자를 바라는 것이 한여름 밤의 꿈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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