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부평지킴이] 자동차정비 외길 34년 ‘서울모터스’ 김문갑

가난에 학교 그만두고 1등 정비사 되다

▲ 김문갑 대표는 사장이 된 지금도 회사가 바쁠때면 어김없이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나간다.
여기 자동차정비 외길을 달려온 사람이 있다. 1976년 처음 자동차를 만지기 시작해 꼬박 34년을 자동차와 살았다. 가난을 이기고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정비회사에 들어가 첫 월급 3000원을 손에 쥐고 내일의 꿈을 꿨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이제 어엿한 자동차정비 공업사의 사장이 됐다.

“지금도 그 첫 월급이 눈에 선하다. 첫 월급 3000원을 손에 쥐고 언젠가는 나도 이런 공장의 사장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아마도 지금 이 공업사에서 일하는 젊은이들도 나처럼 같은 꿈을 꾸지 않을까?”

서울모터스 김문갑(53) 사장은 76년 처음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집안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아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정비 공업사인 ‘삼보공업사’에 취직했다. 삼보공업사는 부평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정비 공업사였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서울모터스가 들어섰다.

김문갑 사장은 자동차정비사에서 시작해 공장장을 거쳐 회사를 설립한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회사를 창업한 것. 이제 어엿한 경영자가 되었지만 지금도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나가 직접 자동차를 정비한다. 직원들은 어려운 정비를 맡아 난감할 때면 어김없이 그를 부른다.

“정비기술은 명창이 소리를 전수하는 것과 같아”

그가 처음 정비를 배우기 시작한 차가 당시 현대의 포니, 기아의 브리샤, 신진(대우자동차 전신)의 코로나 등이었다. 한국자동차산업이 이제 막 싹을 틔울 때라 정비기술 역시 그랬다. 초기단계다 보니 자동차정비를 위한 장비나 부품 등이 열악했고, 근무환경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문갑 사장은 신영공업사(청천동)의 이상근(58) 사장과 더불어 부평에서는 자동차정비 업계의 산증인이다. 김 사장은 삼보공업사에 취직해 이상근 사장으로부터 자동차정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전문적인 자동차정비학교 같은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비기술은 주로 공업사 내에서 전수됐다.

김 사장은 “왜 영화 보면 무술 가르쳐 준다면서 물 나르게 하고 장작 패게 하고 그러지 않나. 도자기 장인들이 도자기술 전수할 때, 명창이 소리를 전수할 때도 몇 년은 도자기 빚는 법이나 소리하는 법은 전혀 안 가르쳐주고 다른 것만 시키지 않냐?”며 “이 바닥도 그랬다. 당시 수출4공단(부평공단) 내 전자회사 같은 공장에 취직하면 월급이 1만 5000원정도 했다. 그런데 난 3000원 받고 일했다. 버스비가 15원정도 했으니 많은 돈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공업사 분위기가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왜 명창이 소리 전수할 때 밥은 주지 않냐 여기도 밥은 줬다. 밥하고 교통비 정도는 주면서 대신 기술은 차근차근 배우게 해줬다. 한 3개월 일하니 5000원, 또 3개월 지나 8000원… 그렇게 조금씩 올라갔다. 한 1년 정도 지나니 월급이 일반 공장과 비슷했다”며 “지금 젊은이들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게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연장을 잘 모르니 뭘 가져오라고 하는지, 뭘 조이고 풀라고 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러니 맞을 수밖에…(잠시 웃음). 지금은 장비뿐만 아니라 환경도 많이 좋아진 거다. 그런데 이 일에 지원하는 청춘이 없어 조금 아쉽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정비는 분류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크게 3가지 사업부로 분류된다. 그 3가지가 판금, 차체(엔진·미션 등), 도장 분야다. 김문갑 사장은 이중 차체와 판금분야 정비에 관해서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기술을 닦아준 데는 신영공업사의 이상근 사장이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그렇게 내일의 꿈을 키워갔다.

김 사장은 “이상근 사장은 판금(사고 등으로 휘어지거나 파손된 차체를 원상대로 복구하는 작업)의 대가다. 그리고 지금은 인천에 없고 서울에 있는 ‘김용인’이라는 분이 있다. 이 두 분과 함께 같이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다”며 “도장부는 연탄재 갈아서 채로 걸러 갠 다음 ‘319빠데’와 섞어서 도장재료를 만들었고, 판금부는 용접할 때 지금처럼 아세틸렌이 없어 카바이트를 물에 넣으면 발생하는 가스를 산소와 섞어 용접했다. 갑자기 물에 넣은 카바이트가 폭발하는 사고도 있었고, 겨울에는 그 물이 따뜻해 그걸로 씻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술을 배웠다”고 전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 듯, 강화에서 고장 난 차는 ‘부평’

부평은 수출4공단이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평시장도 커지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물건도 많아 김포와 강화, 부천, 시흥 등지에서 이곳으로 장을 보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자동차도 포함돼 있었다. 자동차정비 공업사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강화에서 고장 난 차들은 반드시 부평을 들러야 했다.

당시 공업사를 이용하는 차량들은 영업용 택시와 삼륜차가 많았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이젠 카센터에만 가도 차량을 들어 올리는 장비가 다 설치돼있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어디 있었겠냐? 장비가 없으니 차를 뒤집었다. 택시의 경우 ‘장빠찌’작업(차체를 보강하기 위해 차량 프레임에 철판을 보강하는 작업)이 많았다. 차를 뒤집어서 6㎜ 철판을 보강하는 작업이 많았다. 강화에서는 꼭 부평을 들러야 했다”고 전했다.

자동차정비 공업사도 80년 후반 호황기를 거치면서 성장한다. 집집마다 차량들이 하나 둘 씩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정비기술도 발달했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정비 관련 장비들도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김 사장은 설명했다.

50대와 견준 서른 살 공장장, 남은 건 ‘일류 자동차정비회사’와‘후배 양성’

▲ 서울모터스는 최근 1억원을 들여 설비투자를 했다.
1976년 첫 월급 3000원을 손에 쥔 ‘까까머리 학생’은 1년여 넘게 정비 공업사에서 일한 뒤 군에 입대했다. 김 사장은 군에 입대해서도 자동차정비를 놓지 않았다. 입대 전 배운 기술은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 됐다. 그렇게 군 생활을 마치고 80년에 전역하자마자 다니던 공업사에 다시 취직했다.

다시 정비사부터 시작한 김 사장은 금새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 살 되던 1986년, 그는 공장장으로 올라섰다. 오늘날 인사에 비춰봤을 때도 파격적인 인사지만 당시에도 서른 살 공장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최연소 공장장이 된 것.

김 사장은 “공장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50~60대가 많았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부평을 떠나 부천에서 일을 했는데 고참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공장장을 맡게 된 것도 있지만 정비업계에서 ‘김문갑’이라는 이름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며 “그리고 다시 부평으로 넘어와 공장장을 지내다 93년, 지금의 서울모터스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자신이 몸담았던 ‘삼보공업사’ 터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비 공업사를 세웠다. 이제 그의 꿈은 서울모터스를 일류 공업사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김 사장은 최근 적극적인 설비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동시에 자동차정비기술 분야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는 특히 수입차정비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는 “국내 자동차정비는 회사마다 정비사업소가 있다. 물론 우리도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차종을 모두 정비한다”며 “다만 요즘 수입차가 많이 늘었는데 이들 차는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끝나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입차정비에 집중하고 있다. 또, 수입차정비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국내 자동차정비기술 발전에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회사에 정비기술이 30년 이상 된 숙련공이 3명 있다. 근데 그 아래가 중요하다. 지원하려 들지 않는다. 인천에도 여러 공업고등학교에 자동차관련 학과가 있는데 일선 산업현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요즘 대학 진학률이 98%내외라고 하는데 다 그럴 필요 있나? 사회 분위기가 그리 변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아쉽다. 최근 27세 된 젊은이가 입사했길래 열심히 다독이며 가르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려해도 지원자가 드물어 아쉽다”고 전했다.

자동차 정비업계도 경제 불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정비업계에 ‘하청’이 나타나고 있다. 일이 줄다 보니 공장 일부를 임대료를 받고 하청을 주는 것. 이를테면 판금, 차체, 도장 등 각 사업영역을 정비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이와 관련, 김 사장은 “당장은 안정적으로 돈을 쥘 순 있으나 이는 정비업계의 기술력 하락을 가져온다. 그래서 안타까운 일이다. 업계도 변화가 필요하고 우리사회도 직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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