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주
대학원생
이틀 걸러 하루, 사흘 걸러 이틀 꼴로 비가 온다. 뉴스에서는 장마전선이 북상하네, 남하하네 열심히 일기예보를 한다. 워낙 비가 잦아지니 그날의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외출할 때 우산은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내리는 비는 옛 시절, 다시 말해 온대기후 시절 장마 때 비를 긋던 우산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쏟아지는 폭우는 아무리 큰 우산을 쓰더라도 비 맞은 생쥐 꼴을 피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장마철이라고 하기엔 심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장마가 아니라 우기(雨期)다. 우리나라는 30년 전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배운 온대기후 지역이 아니라 아열대기후로 기후 자체가 바뀌었다. 물론 이것은 자연과학 지식이 전혀 없는 일개 무지렁이의 경험적 소견일 뿐이지만, 전문가들의 예측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날씨와 꼭 빼닮은 시국...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정권

<부평신문>이 무슨 기상일보도 아니고, 과학전문지도 아닌데 구구절절 날씨 이야기인가 싶을 것이다. 요즘 굴러가는 시국이 하 수상한 요즘 날씨와 꼭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다.

정부가 내세운 검찰총장 후보의 개인 문제에 대한 의혹이 폭로되자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해야할 검찰은 그 조사가 아니라 그런 의혹이 제기되게끔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정보가 유출된 경위를 찾기 위해 관세청 내사에 나선다. 뭔가 뒤바뀌었다. MBC PD수첩 수사 때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관련자들의 개인 이메일까지 다 뒤지고 앞장서서 사적인 이메일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던 이들이 언제부터 개인의 사생활 보호에 관심이 있었다고 저러나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다.

극단도 직접 만들어 운영한 배우 출신 장관은 단 한 번의 현지방문으로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사업을 추진 중이던 예술인마을 백지화시킨다. 이유는 단 하나, “수익성이 없다”는 것이다. 배곯는 직업군으로 분류될 만큼 열악한 연극판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장관이 문화예술에 ‘수익성’ 운운하며 추진 중이던 사업을 뒤엎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다.

재래시장을 방문한 현직 대통령은 대형마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소연하는 상인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순진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듯한 표정으로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한다. 재래시장이 뭔지 알기는 알고 하는 소리인지 “인터넷을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이건 뭐, 개그프로그램 농담 따먹기만도 못한 대사다. 한 나라의 운명, 4800만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대화 수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다.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뀐 시대...근원적인 체제변화 도모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이지 않은’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정치뉴스 대부분이 그렇다. 여기서 구구절절 되뇌는 것이 구차할 지경이다. 이쯤 되면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무개념 상황들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상식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온 상식 그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한국 정치의 역사,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를 통해 사법기관이라면, 장관이라면,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이래야한다고 대중적으로 합의되었던 사회적 공감대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시대라는 얘기다.

비상식적인 시대를 통탄하는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에 징계와 내사로 보복하는 시대, 민주주의 본래 뜻인 국민주권은커녕 국민의 목소리에 폭압으로 대응하는 시대, 최소한의 민주적 원칙이라고 생각해온 가치들이 무시되는 시대이다. 단지 장맛비가 거세지거나 그 기간이 길어진 문제가 아니라 기후 자체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 요즘 장맛비에는 우산이 소용없다. 온대기후의 여름철 장마려니 생각하고 기껏 튼튼한 우산 하나 준비해봤자 기나긴 아열대기후의 우기에 접어든 여름 날씨를 감당하지 못한다.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화한 기후변화가 단순히 장마기간의 길어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듯 이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는 단순히 비상식적인 제도나 관행 몇 가지가 돌출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변화이다.

지금은 장마대비가 아니라 생태계, 즉 생존권 자체를 파괴하는 체제 자체의 근원적인 변화를 도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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