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행주를 삶았다. 평소엔 주방세제로 주물러 빨다가도 날이 더워지면 왠지 삶아야할 것 같다. 행주 삶는 전용 냄비에 세제와 과탄산소다를 조금씩 넣어 물을 붓고 행주를 담갔다. 과탄산소다는 행주를 하얗게 해주고 살균도 한다.

내가 사용하는 행주는 광목이라는 면직물이다. 20여년 전 엄마가 동인천의 한 한복 가게에서 천을 끊어왔다. 커다란 광목천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장롱에 쌓아두었다가 언니가 결혼할 때, 그리고 몇 년 후 내가 독립할 때, 행주로 쓰라며 나눠줬다. 이후로도 몇 차례 이사 다닐 때마다 그 천은 나를 따라다녔다. 직장 다니느라 바쁠 땐 하얀 행주가 너무 쉽게 얼룩이 지는 게 부담스러워 마트에서 색깔 있는 행주를 사서 썼다. 몇 년 전부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광목을 다시 행주로 사용하고 있다. 아직도 천이 서너 개 남아 있다.

엄마는 왜 그렇게 행주를 잔뜩 사두었을까. 지난달 29일,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엄마 집을 들렀다. “그땐 광목천을 파는 데가 별로 없는 줄 알았어. 나중에 필요할 때 못 사면 어쩌나 해서 잔뜩 사둔 거지.”

요즘 시중에서 파는 행주는 물수건이나 극세사 형태로 된 것이 많다. 엄마는 왜 하필 광목을 산 것인지 궁금했다.

“물수건 같은 걸로 닦고 나면 먼지 자국이 남아. 근데 광목은 안 그래. 물도 잘 먹고. 그래서 광목을 행주로 많이들 쓰지.”

엄마에게 행주 이야기를 더 들어보았다. 첫 행주의 기억부터.

“처음에는 광목 같은 거 못 썼어. 난닝구 같은 거 입다가 구멍 나면 행주로 썼지. 너설너설하게 떨어진 거. 그걸로 상 닦고 솥 닦고 부뚜막도 닦고. 그러니까 대체로 지저분하지. 그러면 쌀뜨물 받아둔 거에다 행주를 담가놨다가 빨아.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은 그랬어.”

# 구멍 난 메리야스로 행주를

‘한국 가정에서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부엌의 행주란 걸레처럼 아무렇게나 생각해 떨어진 옷 나부랭이로 더럽게 해두는데 사실은 여기에도 식기나 꼭같이 마음을 써야만 하겠습니다.’ (1960.10.5.경향신문)

‘보통 가정에서 내복이나 메리야스 떨어진 것을 (행주로) 쓰는 습관은 지극히 위험한 일.’ (1970.5.8. 경향신문)

낡은 옷이나 메리야스를 행주로 사용하는 일은 흔했다. 입던 옷을 행주로 사용하지 말자는 기사가 1970년대에도 나온다. 엄마의 이야기론 당시 메리야스는 요즘 것과 달리 빨리 헤졌고, 몇 군데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도 웬만해선 그냥 입었다. 더는 못 입을 만큼 옷이 떨어지면 행주로 썼다. 다른 천에 비해 물 흡수가 잘 되고 색깔도 하얀색이라 행주로 쓰기 좋았던 것이다. 집안 살림을 도맡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돈 쓰는 걸 최대한 줄였다. 행주를 돈 주고 산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행주는 밥상과 솥, 부뚜막 등 부엌 곳곳에서 쓰였다. 설거지를 마친 그릇의 물기를 행주로 닦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에서 보듯 당시 행주는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을 행주로 닦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솥에 밥을 하면 그걸 그릇에 퍼 놔야 하잖아. 근데 물 묻은 그릇에 밥이나 음식을 담아두면 빨리 쉰단 말이야. 여름에는 특히 더 그렇지. 그러니까 물기를 없애야해. 대나무를 발처럼 엮은 걸 천장 아래에 걸어두고 거기에 그릇을 엎어두기도 했어. 그러면 대나무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잖아. 그걸 살강이라고 하는데, 살강이 없는 집도 있었지. 그런 집에선 행주로 닦는 거지. 우리 집엔 살강이 있었고 행주로 그릇을 닦진 않았어. 아무래도 행주가 깨끗하지 않으니까, 그냥 말린 거지.”

‘두부는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행주로 꼭 짜서 풀어 넣고 깨, 소금, 초, 설탕을 넣어서 섞은 후에 너무 되면 국물을 조금 넣는다.’(1974.7.5.매일경제)

‘부드럽고 큰 깻잎을 행주로 하나하나 닦아 물기를 없애고 이를 5, 6장씩 한 데 묶는다.’ (1978.9.22. 동아일보)

신문에는 행주로 두부의 물기를 짠다거나 깻잎의 물기를 닦는 등 요리를 할 때 사용한다고 나온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는 달랐다. 행주가 아닌 삼베보자기나 천을 조리용으로 따로 두고 사용했다.

“행주를 음식 만들 때 쓰는 경우는 내가 알기론 없었어. 삼베보재기로 했지. 먹을 거 만들 때 쓰는 삼베보재기가 있었어. 깻잎을 행주로 닦는다고? 씻어서 잠깐 물 빼서 소쿠리에 널어놨다가 그냥 요리하는 거지, 그걸 누가 닦고 있어. 도시에서는 그렇게 했는지 몰라도 시골에서는 바쁜 데 그걸 누가 일일이 닦겠어?” 도시와 시골의 차이인지, 기사를 쓴 이가 현실을 잘 몰랐던 건지, 아무튼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행주.(출처 아이클릭아트)

# 변기보다 더러운 행주?

‘행주는 반드시 둘을 가지고 사용해야한다. 물행주 하나, 마른행주 하나, 일단 요리가 끝나면 한 번씩 삶아내도록. 삶지 못한다고 해도 뜨거운 물에 한 번 담갔다 꺼내어도 균은 죽는다. (중략) 부엌에서 행주 쓰는 일이 너무 습관화되었기 때문에 행주에 대한 위생관념이 희박한데 사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장균이 많다는 사실이 서울시 위생당국이 주최한 한 발표회에서 발표된 일도 있다.’(1963.4.5.동아일보 ‘건강은 깨끗한 행주로부터’)

날이 더워질 때쯤이면 행주 위생에 관한 기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행주에 대장균 등 병균이 많아 식중독이나 각종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기사에서는 행주를 매일 삶고 햇볕에 말려야한다고 강조한다. 행주뿐만이 아니다.

‘장마철에는 어느 때보다 병균이 들끓는다. (중략) 찬장, 식기, 행주, 도마, 칼, 부엌 바닥 등을 청결히 할 것이다. 천장은 망사문을 달아 쥐, 파리 등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행주는 마른 것, 진 것을 구별해서 여러 개를 마련, 비눗물에 삶아 햇볕에 말려 쓰도록 한다. 식기와 칼은 뜨거운 물에 비누로 자주 소독하고 바닥은 항상 물기가 없게 해야 한다. 음료수는 수인성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 쉬우므로 끓여 먹어야 하고 뚜껑을 보관, 오염을 막고 수도꼭지도 항상 비누로 닦아 깨끗이 해둔다.’(1972.7.14.경향신문)

집안 위생과 식구들의 건강이 누구의 책임인지 기사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사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엄마나 자신의 아내, 또는 딸을 떠올린다. 이들은 ‘주부’란 이름의 무급노동자다.

‘세탁기의 배신(김덕호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은 미국 가정에 세탁기와 청소기 등 수많은 가전제품이 보급됐는데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 시간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를 고찰한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20세기 초부터 청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강박적일 만큼 청결에 대한 기준이 향상됐다”고 한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세균이고, 질병과 더러움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감염경로를 통제할 수 있으며, 질병 또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박테리아학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질병의 원인을 더 이상 운명이니 신의 뜻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얘기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질병의 원인이 되는 더러움을 제거하는 몫은 주부들의 것이 되었다.”(위의 책 291쪽)

산업화 이전엔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족구성원 모두 함께 처리했다. 부엌은 주로 여성이 담당했지만, 농사를 짓고 땔감을 구해오고 지붕을 새로 얹고 물을 길어오고 수확물과 농기구를 관리하는 등 많은 일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보탰다. 그러나 남성들이 직장을 얻고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기 시작하면서 집 안일과 육아, 양육은 모조리 여성의 몫이 됐다. 일하는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여성의 역할은 점차 가족의 건강, 영양 균형이 잡힌 식단, 자녀 교육 등 한없이 늘어났다. 그러나 ‘바깥일’을 하는 남성들에게 급여가 지급된 것과 달리 주부의 일에는 임금이 주어지지 않았다. 노동은 있으나 임금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식중독과 전염병을 막아야한다는 이유로 주부에게 매일 행주를 삶고 말릴 것은 강요한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여름철 세균의 온상인 물행주 추방운동이 동아방송을 통해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다. (중략)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보건 낙후의 유물, 물행주 대신 마른행주를 사용하든가 아니면 차라리 행주를 쓰지 않는 것이 안전한 건강관리법이다.’(1969.6.12.동아일보)

물행주는 추방돼야할 공공의 적이 됐다. 행주와 세균에 관한 인식은 점점 확대됐다. 1977년 출시한 ‘유한락스’는 신문에 “행주 하나에 100만 마리의 세균이…이제부터 삶지 말고 유한락스를 써보세요”라는 내용의 광고를 실었다. 1981년엔 “행주여 안녕! 이제부터 크리넥스 키친타올이에요”라는 광고도 실렸다. 물행주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종이행주는 출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에선 ‘1회용 종이행주까지 나오고 있다’(1981.10.13. 경향신문)며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서울시내 319가구의 주방위생 관리실태를 미국식품의약국의 측정방법을 써서 최근 조사한 결과 주부 10명 중 8명 이상의 위생관리점수가 상중하 중 하로 평가됐다고 25일 밝혔다.’(1996.7.26. 동아일보)

‘도마, 수도꼭지, 싱크대 등 집 안의 다른 어떤 곳보다 변기의 앉는 자리가 더 위생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1998.7.6. 한겨레)

이제 주부들은 변기가 주방보다 더 위생적이라는 불필요한 모욕의 말을 들어가며 미국식품의약국(FDA)의 기준에 맞는 위생관리를 해야할 처지가 됐다.

# 일회용 행주 쓰는 엄마

내게 광목천 한 무더기를 마련해줬던 엄마는 요즘 일회용 행주를 사용한다.

“한 번 쓰고 버리면 아까우니까 말렸다가 서너 번 쓰고 버려. 아주 편해. 천 행주보다 더 깨끗한 것 같고. 너는 쓰레기 나온다고 쓰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뭐 얼마나 살겠어. 고생 많이 하고 살았는데 사는 데까진 좀 편하게 살고 싶어.”

70 평생 쓸고 닦고 삶고 말리고 했어도 돌아온 건 공장에 다닌 10년 치 국민연금뿐. 국내총생산에도 포함되지 않는 무급 가사노동인데 아무렴 어떨까. 늘그막에 지구 환경까지 지키며 불편하게 사시란 강요는 못하겠다. 일회용 행주 쓰지 말란 잔소리는 이제 그만 해야겠다. 대신 엄마가 사주신 광목 행주나 오래도록 아껴 쓰며 살아야겠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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