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콘도 요시후미 감독│2007년 개봉

요즘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2월 이후 예술영화전용관은 물론이고 대형 멀티플렉스마저 휴관 사태를 맞았고,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들은 줄줄이 개봉이 연기됐다. 그나마 상영 중인 극장도 상영시간이 대폭 줄었다. 개봉 영화가 별로 없으니 예전 영화들을 재탕, 삼탕 상영하는 기획 상영이 몇 안 되는 상영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볼 영화가 없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다중이 꽤 긴 시간 갇혀있어야 하는 극장은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공간 중 하나가 됐으니. 4월 이후 몇 안 되는 개봉작 중 보고 싶은 영화가 거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강도 높은 거리두기는 해제됐지만, 나의 영화 보기에서는 때 늦은 거리두기를 시작할 수밖에.

4월 넷플릭스(멀티미디어 서비스 플랫폼)에 공개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을 선택했다. 1995년 작. 한국에서는 2007년 개봉했다. 아주 오래된 영화다. 그러나 한국 개봉 당시 대규모 개봉이 아니었기에 많은 관객을 만나지는 못했고 이번 넷플릭스 공개로 새롭게 관객을 만나고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중3 소녀 시즈쿠(혼나 유코)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대출카드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다. 시즈쿠가 빌린 책마다 앞서 빌린 사람으로 기록돼있는 그 이름은 세이지. 자신이 읽는 책을 언제나 앞서 읽는 동일한 사람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취향도 맞을 테고, 무엇보다 시즈쿠가 좋아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테니.

첫 만남은 실망스러웠지만 시즈쿠는 길고양이 문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세이지(다카하시 가즈오)에게 금세 호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겠다는 확실한 꿈을 가지고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이탈리아로 가겠다는 확신이 부럽기만 하다. 세이지를 보며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 자신이 초라해지는 시즈쿠. 평소 친구들에게 시인으로 불리던 시즈쿠는 ‘글을 잘 쓴다’는 세이지의 말에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한다.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은 지금까지 봐온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지브리 특유의 환상과 스팩터클은 쏙 빼고, 아련한 10대 시절의 꿈과 사랑을 담은 청춘물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인물과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 특별하지 않음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채우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아날로그 도서 대출카드, 1990년대 도쿄 외곽의 낡은 골목길, 햇볕에 널어 말리는 빨래들, 친구를 통해 손편지로 전하는 짝사랑, 세일러복을 입고 까르르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시즈쿠의 첫 소설, 손으로 깎고 문지르며 만드는 세이지의 바이올린…. 여기에 ‘미래소년 코난’과 ‘빨강머리 앤’으로 지금의 40~50대에게 매우 친숙한 콘도 요시후미의 2D 그림까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몽글몽글해진다.

‘귀를 기울이면’은 시즈쿠와 세이지의 첫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즈쿠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찾고 도전하는 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시즈쿠의 첫 소설에 모티브를 제공해준 친구이자 첫 독자가 돼준 세이지의 할아버지는 시즈쿠에게 말한다. “자기 안의 원석을 찾아내서 오랜 시간 다듬어가는 거란다.” 당장 보기엔 작고 볼품없는 원석이 세공이라는 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이 된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을 이 영화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영화의 영문 제목 ‘Whisper of the Heart’처럼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어찌 10대만의 이야기, 1990년대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코로나19 덕에 21세기의 속도와 습관들이 강제로 멈춰지고 있는 이때, 어쩌면 이 영화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들려주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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