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악의 단어, ‘빨갱이’와 ‘수구꼴통’

“저 빨갱이 새끼들 49재 때 어쩌는가, 지켜봐야지!”
얼마 전 친목회에 갔을 때 회원 한 분의 증오 서린 말이었다.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친목회였으나, 10년 이상 지속되었고 연령대도 40대에서 70대까지 분포한 조금은 신기한 모임이었다. 지역에서 만나 이루어진 이런 모임은 부모님들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될 정도로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안이 없어도 모임이 지속된다.

그러나 가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려는 사람이 생겨나면 자리가 꽤 불편해진다. 나는 되도록 입장이 일치하기 어려운 정치적 논쟁을 피하는 편이고, 굳이 한마디 하면 각자 다른 정치적 선택에 대해 서로 인정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정도로 정리를 하려하곤 한다.

정치적 선택이 달라도 인격적 교류는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인격을 파괴하는 다양한 폭력이야말로 진보와 보수 모두가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언어폭력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충돌보다 더 자극적이며, 지속적이기 때문에 그 상처와 후유증은 깊고 넓다.

경멸과 증오로 가득한 언어 또는 단어들의 대표적인 것이 ‘빨갱이’와 ‘수구꼴통’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이미 양자가 대화와 타협, 또는 상호인정의 근거를 뿌리부터 부정하는 이 시대 최악의 단어다. 이런 말들 속에서 개인은 인격체가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비인간’의 영역으로 떨어진다. 시민들은 누가 만들어냈는지도 모르는 이런 분열적 편 가르기에 편승해 자신의 이웃에게도 굴레를 씌우는 언어 행태의 노예가 되어간다. 

분열적 언어와 증오의 재생산은 역사와 민족을 가르는 죄악일 뿐

우리들이 가지는 일상생활에서의 논쟁은 개인적으로는 시비꺼리도 안 될 정도로 영향력이 미미하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사회적 여론공간을 통해 벌여나가는 말은 그리 간단치 않다. 특히 말의 힘을 알고 있는 자들이 말을 가지고 벌이는 편견과 증오의 재생산은 그 시비가 명확해야한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벌이는 집권자들과 지식인들의 강도 높은 비난은 말의 극단성으로 인해 내용 전달이 안 될 지경에 이른다. 현 시국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각은 한마디로 “민주주의 후퇴, 독재의 시작”이다.

이 한마디가 갖는 무게는 심상치 않다.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이런’ 상황에도 무기력하다고 판단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80대 고령이라는 체력적 한계를 밀쳐내고 현실 정치판에 처절한 기운을 세워 강력한 저항을 권고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겁다.

이런 정황이 여당이나 보수주의자들에게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여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힌 전직 대통령을 ‘환각’상태로 몰고 가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비열하다. 박희태 대표의 이런 발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넘어 국민이 정치인을 경멸하게 만드는 천박한 표현이며, 모국어에 대한 능욕이다.

군사독재 정권의 대변인이었던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약 올리는 일에 능한 것을 자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당의 지적수준을 격하시키는 능력은 더욱 탁월했음을 알아야 한다.

또 한 사람 학자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없는 유명인사 김동길씨가 있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도 온갖 야유를 보냈던 이 분이 이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자살을 권유했다. 예수정신과는 정반대의 삶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권하는 이 기이한 기독교인은 그의 주장이 무엇이건 간에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세상에 퍼뜨리는 데 어두운 지식을 난도처럼 휘두른다.

나는 그의 정치적 선택이나 변절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정치적 입장은 자신의 처한 현실과 이해관계, 그리고 어느 정도 헷갈리는 이데올로기적 판단 등, 복합적 작용을 하기 때문에 완벽한 판단은 없다. 따라서 완벽한 선택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분열적 언어와 증오의 재생산은 어지러운 시대 자신들의 지적 허명을 높이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역사와 민족을 가르는 다시없는 죄악이 아닐 수 없다.

공동체의 주요 정서가 서로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집단적 증오에 근거한다면 이것은 비극이다. 이제 말로써 세상을 세울 수는 없지만, 말로써 세상을 할퀴고 망치는 악행은 멈춰야한다. 특히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자들은. 

인륜과 양심의 거울을 가지길

노무현 대통령의 49재가 다가 왔다. 이제 그의 죽음에 대해서까지 극악한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그러진 영혼을 비출 수 있는 인륜과 양심의 거울을 하나씩 가지길 바란다. 더불어 자신을 낳아준 모국의 언어에 대해서도 인간의 예의를 갖기를 바란다.
▲ 인태연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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