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작가회의 최초 직선 사무총장 신현수 시인
교사 퇴임 후 여행 작가 꿈 미뤄…다양한 활동 모색
“젊은 작가 포럼 지원, 작가 권리 향상 등 도모할 것”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신현수 시인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시인, 시민운동가, 문화예술단체 대표 등이 그를 수식했거나 수식하고 있는 말이다. 올해 초 새로운 경력이 또 생겼다. 한국작가회의 역사상 최초 직선제로 선출된 사무총장이다.

신현수 시인은 1985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작가회의에는 1990년에 입회했다. 1998년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창립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그 이후 4ㆍ7ㆍ11대 지회장을 맡았다. 최근엔 2년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일하다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된 그를 만나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들어봤다.

한국작가회의 최초 직선 사무총장에 선출된 신현수 시인.

교사 퇴임 후 여행 작가 준비 접고 주변 권유로 출마

한국작가회의는 한국의 대표적 문인단체다. 1974년 유신정권의 폭압에 맞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계승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자 자본주의적 문화 논리가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절과는 다른 방식의 실천이 요구되자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사단법인화로 제도권 안에서 새로운 문학운동을 전개했다. 2007년에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작가회의는 1975년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부터 세월호 참사, 박근혜 탄핵 촛불까지 한국의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시대의 아픔과 늘 함께해왔다. 이 때문에 지난 정권에서는 문화예술단체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작가회의 임원 선출 절차는 비민주적이라는 내부 비판이 지속됐다. 이사장과 사무총장 선거가 직선제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사장 선출방식은 총회 준비위원회 추천을 거쳐 이사회에서 선출을 의결하고 총회에서 추인 받는 식이었다. 결국 지난해 총회에서 ‘한국작가회의 선거관리위원회 규정(안)’을 발표했다. 일단 현재 정관으로도 가능한 사무총장만이라도 직선제로 선출하기로 결정했고, 신현수 시인이 접전 끝에 당선됐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한 신현수 시인은 2월 말 교직생활 33년을 마치고 퇴임하자마자 큰 임무를 맡게 됐다. 그는 퇴임 후 인생이모작으로 여행 작가를 꿈꿨다. <인천투데이>에 7년 넘게 ‘신현수의 걷기 여행’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전문 여행 작가나 사진작가는 아니지만 어차피 다니는 여행이니 다녀온 곳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신현수 시인은 여행 작가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로 어학능력을 꼽았다. 영어ㆍ중국어ㆍ일본어ㆍ스페인어 회화능력을 갖추면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사 퇴임 전부터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7년 동안 문화교양학과ㆍ일본학과ㆍ중어중문학과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했다.

일본어 능력시험 N4도 합격했지만, 막상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은퇴 후 일본과 중국으로 유학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변 선후배들의 권유로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신 사무총장은 “은퇴 후 3월 초 스페인 여행을 시작으로 3월 말 라오스 방갈로초등학교 봉사활동, 4월 일본 유학 등을 준비했는데, 어차피 코로나19 확산으로 못가는 상황이 됐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작가회의 사무총장을 해야 하는 운명이었나 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세운 계획은 임기를 마친 2년 뒤에 다시 진행할 예정이지만,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데 2년 뒤 계획을 잡는다는 게 이제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젊은 작가 포럼 중심 활동 모색…재정문제도 해결 노력”

신현수 총장은 중점 공약으로 작가회의 분과 중 하나인 ‘젊은 작가 포럼’ 적극 지원을 거론했다. 이 포럼은 40세 이하 회원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는 “젊은 작가 포럼을 보면 작가회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젊은 작가 포럼이 작가회의의 미래이고, 곧 대한민국 문학의 미래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포럼 위원장인 김건영 시인과 자주 소통하고 있다. 최근엔 5ㆍ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행사를 젊은 작가들과 함께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주로 젊은 작가들의 광주 관련 시 낭송이나 광주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들이 모여 광주항쟁의 의미를 토론하는 낭독회를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고민이다. 온라인 행사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 오프라인 행사를 따로 하더라도, 5월이 지나기 전에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행사를 꼭 하려한다. 이에 따라 기념 낭독회를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 형식으로 준비 중이다.

신 총장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실천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하고 가능한 건 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30여 년간 작가회의 회원 노릇을 했지만 작가회의 재정 상황이 이토록 열악한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회원들이 매달 회비를 내주는 게 정말 고맙지만, 회비만으로는 사무처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 경상비를 충당하는 것도 빠듯하다.

그는 “격월로 발행하는 회보와 1년에 두 번 내는 ‘내일을 여는 작가’지, 청소년 백일장, 아름다운 작가 콘서트 등은 모두 후원받아야한다”며 재정문제를 강조했다.

이어 “모든 단체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지회까지 합치면 회원이 총 3000여 명 되는데 회비 납부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출판사 등의 후원도 최근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 총장은 또, ‘이상 문학상 사태’로 불거진 작가의 권리문제를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이상 문학상 사태란 주최 측인 문학사상사가 수상작의 ‘저작권 3년간 양도’와 ‘작가 개인 단편집 게재 금지’ 등을 요구해, 김금희ㆍ이기호ㆍ최은영 작가가 수상을 거부한 사건이다. 작가회의도 관련 성명을 발표했고, 문학사상사는 뒤늦게 사과하고 조항을 수정했다.

2019년 출간한 신현수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천국의 하루'

“시(詩)는 일상을 소통해야…시인들이 사회에 이바지했으면”

신현수 총장은 시집(詩集)을 7권 펴낸 시인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게 일상생활을 담아내는 ‘이야기 시’를 주로 쓴다.

“소설이든 시든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거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남들이 알아야한다. 그래야 공감을 이끌어낸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고 있는지 모르는 난해한 시보다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그의 일곱 번째 시집에 담긴 ‘천국의 하루’는 평화로운 일요일 일상을 묘사했다. 늦잠에서 깨어난 휴일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등산과 목욕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시에는 바나나우유와 카스테라, ‘도전 골든벨’과 ‘걸어서 세계 속으로’처럼 평화로운 휴일을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이 날것으로 등장한다.

“시가 무기가 돼야하는 시대도 있었다. 그런 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이제는 시인들이 쓰는 시로 국민들이 감동을 받고 국민들의 마음이 따뜻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한다. 시인들이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바지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그는 “건강은 필수이며 실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뿐이라면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쉽다. 자신의 체력과 실력을 남들과 나누는 덕을 갖춘 사람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근대 교육의 목표인 지덕체를 이 순서로 바꾸면 ‘체지덕’인 셈이다. 이는 신 총장이 교사 시절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신 총장은 큰 단체를 맡은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 자신의 실력이 이웃과 국민들을 위해 쓰이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총장은 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닌다. 작가회의 특성상 출판사 관계자도 많이 만난다. 작가와 출판사는 서로 성장하고 성장시키는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다시 불거진 ‘구름빵’ 저작권 사태는 몹시 안타깝다. 임기 초에는 매일 아침 일찍 인천 부평에서 작가회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마포 중앙도서관까지 출근하는 게 고됐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교육운동과 시민운동을 하면서 평생을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문예운동 분야까지 넘어왔다. 그리고 정말 뜻하지 않게 내 삶을 문화운동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작가회의를 만들고 싶다. 후배들에게 존경까지는 못 받아도 어느 정도는 삶에서 본을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다. 후배들이 고민이 있을 때 술 한 잔 하고 싶은 선배로 먼저 떠오르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 후배들이 ‘저 선배처럼 사는 것도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하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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